묵상 573

1장 6절

*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당시에 제자가 랍비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랍비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랍비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랍비는 존경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요한이 세례요한의 제자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세례요한의 소개 때문이었습니다. 그 배경을 1장에서 요한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첫번째 제자가 된 사람은 요한과 안드레입니다. 요한은 세례요한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세례요한은 선지자 전통에 있던 사람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

묵상/요한복음 2022.03.22

1장 4, 5절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밖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떡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생명을 얻습니다.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가 구해야 할 매일의 양식이 나옵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매일의 양식은 하루 세끼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매일 먹어야 합니다. 영원한 현재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매일 살아낼 힘은 생명의 떡으로부터 옵니다.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은 빛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빛을 향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듯이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

묵상/요한복음 2022.03.18

1장 2, 3절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 안과 밖에 존재합니다. 밖에 있다고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안이나 밖이나 하나님 말씀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안에 있다는 것은 생각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은 영원히 삼위일체로 존재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영원히 함께 일하십니다.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이루시고, 성령은 이루신 것을 적용하십니다.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성부께서 만물을 계획하셨습니다. 성자께서 만물이 있게 하셨습니다. 성자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성자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천지 창조의 주간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이루셨습니..

묵상/요한복음 2022.03.18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태초는 영원한 현재를 말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태초를 말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던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만 있었나요? 하나님도 계시고 성령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안에 복수, 복수 안에 단수로 계십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어디에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말씀하시면,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죠. 하나님의 마음 속에 생각으로 있었다가 생각을 발하시면, 말씀이 되죠. 이 말씀이 곧 제2위 하나님이시죠. 이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던 분이라고 요한은 증언합니다.

묵상/요한복음 2022.03.18

고린도후서 4장 7-10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여기에 보면 주어가 나와요. 주어는 우리가예요. 여기서 우리가를 내가로 번역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영문번역도 다 we라고 번역했어요. 내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아야 해요. 질그릇은 우리 몸이죠. 질그릇을 만드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죠. 예수님은 다양하게 질그릇을 만드셔요. 내가 질그릇에 담아야 하..

1장 17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성경에는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다니엘 10장 8, 9절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고레스 3년에 다니엘은 앞으로 다가올 큰 전쟁과 재앙에 관한 환상을 보고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그는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금식하며 세이레 동안(21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노년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변함..

1장 16절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습니다. 사실 별은 아니겠죠, 별이 얼마나 큰 지 사람들은 지금은 압니다, 한 마디로 사기꾼으로 몰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별은 상징입니다. 요한은 교회라고 말하고 싶은데 대신에 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쓴 글이 있어 가져 왔습니다,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모였을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모여서 예배와 교제, 성례를 행하고 신앙의 길을 갔을까? 오늘의 예배당과 같은 집회소로서의 교회당은 언제부터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떤 발전의 과정..

1장 15절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갑자기 발로 갑니다. 얼굴에서 발로 내려 간 것입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당시에 예수님은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런데 요한은 그 예수님의 발이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고 하네요. 이 구절도 구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구약에 능통한 학자였습니다. 그것도 그 당시에 가장 영향력이 있던 다니엘에 능통했습니다. 다니엘 10장 6절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다니엘은 그가 본 분이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다고 말합니다. 국어사전을 보니까 놋은 구리와 아연을 섞어서 만든 쇠붙..

1장 14절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요한은 예수님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도 눈 같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시편 133편을 생각하게 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대제사장의 위임식 때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관유의 재료들은 두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범주는 네 가지 향품-몰약, 육계, 창포, 계피-입니다. 두 번째 범주는 기름입니다. 몰약은 향기롭지만 맛은 씁니다. 액체 몰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몰약은..

1장 13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요한은 어디에 와 있습니까? 요한은 성소에 들어 와 있습니다. 요한은 그곳에서 일곱 촛대를 보았습니다. 황금 등잔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일곱 촛대는 그 해석이 20절에 나옵니다. 요한은 누군가를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인자 같은 이였습니다. 인자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용어입니다. 요한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인자가 아니십니다. 그런데 요한의 눈에는 인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인자라 말하지 않고 인자 같은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요한은 성전안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