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요한계시록

1장 15절

기독항해자 2021. 3. 27. 11:37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갑자기 발로 갑니다.

얼굴에서 발로 내려 간 것입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당시에 예수님은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런데 요한은 그 예수님의 발이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고 하네요.

이 구절도 구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구약에 능통한 학자였습니다.

그것도 그 당시에 가장 영향력이 있던 다니엘에 능통했습니다.

 

다니엘 10장 6절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다니엘은 그가 본 분이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다고 말합니다.

국어사전을 보니까 놋은 구리와 아연을 섞어서 만든 쇠붙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았겠죠.

그것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이게 놋그릇이랍니다.

예수님은 백인종인가요 황인종인가요?

예수님은 황인종이었습니다.

코카서스 백인종들이 대거 개종하여 지금은 백인종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에 백인종은 거의 없었겠죠.

물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는 개종한 백인종들이 있어 백인 유대인이 있기도 했습니다.

 

놋은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요?

출애굽기 3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막을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다섯 규빗이요 너비도 다섯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세 규빗이며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제단과 연결하게 하고 제단 으로 쌌으며

제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으로 만들고

제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에 두되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으로 싸고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었더라

그가 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으로 뜰의 쪽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1-10)

 

놋으로 뜰 사면의 기둥받침 번제단과 거기에 속한 부속 기물, 놋그물, 놋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기물들은 성막 마당에 구조물들입니다.

지성소에 있는 기물들은 금으로, 성소에 있는 기물들은 은으로, 마당에 있는 기물들은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성막 마당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번제단에 각종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다니엘은 놋과 같은 손과 발을 가진 인자를 보았습니다.

요한은 이 대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주석이란 단어를 가져옵니다.

주석은 연하며 푸른 빛이 나는 은백색 금속입니다.

고대에는 구리와의 합금인 청동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주석은 지금도 단독으로 쓰이지 못하고 어떤 물질과 결합하여 인간에게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붙는 사람은 유용한 사람이 됩니다.

주석은 금속으로 쉽게 산화되지 않으며 다른 금속의 부식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주석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패를 방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요한은 발에서 음성으로 옮겨갑니다.

지금까지 요한이 묘사한 예수님의 모습은 2장,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래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요한은 예수님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했을까요?

이것도 구약의 말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은 구약에 정통했던 사람입니다.

 

다니엘 10장 6절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인자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43장 2절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성경에 보면 물에 대해서 말하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물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물은 식물을 살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은 인류가 생존하기에 딱 적당합니다.

그것은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0-15절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 에덴에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각종 먹을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배가 고프면 손을 들어 과일을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에는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이 강물이 에스겔서에 등장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을 건너게 하시니 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을 건너게 하시니 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을 건너게 하시니 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로 그 바다의 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생수의 강이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성전 문지방에서 시작됩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주위에 식물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각종 과일이 주렁주렁 맺힙니다.

에덴 동산의 회복을 말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인간이 교류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고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게 생수의 강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생수의 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을 관통하여 흐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수의 강이 어디에서 발원합니까?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발원합니다.

어떤가요?

에덴동산, 성전 문지방, 보좌는 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성전의 회복, 예배의 회복을 말합니다.

예배의 회복은 성소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경배와 찬양을 백날해도 예배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성전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생수의 강은 우리 배에서 흘러나야 합니다.

그 말은 우리가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지성소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게 예수님께서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골자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1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생수는 우리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 몸이 성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몸에서 생수가 흘러납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다른 곳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우리는 생수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됩니다.

절로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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