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요한계시록

1장 17절

기독항해자 2021. 4. 5. 16:19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성경에는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다니엘 10장 8, 9절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고레스 3년에 다니엘은 앞으로 다가올 큰 전쟁과 재앙에 관한 환상을 보고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그는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금식하며 세이레 동안(21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노년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지위가 높아져도 처음 가진 믿음과 열정을 끝까지 지키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다니엘은 힛데겔강가에서 세마포 옷을 입고 우바스 순금 띠를 띤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얼굴은 번개 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과 같았고 놋 같은 팔과 발을 가졌고 말소리를 무리의 소리와 같았습니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본 다음에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습니다.

힘이 다 소진하여 죽은 것과 방불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음성을 듣고 잠이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7-9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 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을 세 번 설교를 합니다.

아마도 더 많이 설교 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이 세 번이란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아집니다.

힘이 빠진다든가 눈은 떴으나 보지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보지 않는 게 좋을까요?

그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게 좋은 일이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 나중에 회복되었습니다.

체험도 하고 회복도 되고, 일석이조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바뀝니다.

인생의 변곡점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도 인생의 변곡점을 맞주한 것입니다.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죠.

요한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과거의 그의 모습은 다 처리되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오른손을 들어 요한에게 얹으셨습니다.

늙은 요한은 힘을 얻고 활력을 내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손이 나를 터치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른손의 터치를 체험하고자 각종 집회와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이런 집회와 모임들이 대부분 불건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조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주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분들이 치유집회에 갑니다.

저도 종종 이런 집회에 참여해 보았어요.

인위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하더라구요.

아마도 오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가난하고 무지하고 그래서 병원에는 갈 수 없으니까 치유집회를 찾죠.

나는 부자들이 치유집회에 갔다는 말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어요.

마태복음 28장 1-10절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일까?

막달라 마리아는 사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인지는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천주교에서는 높이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무덤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그냥 무덤을 보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이 열려 있고,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다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천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본다면 두려워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

이들은 천사로부터 예방 접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다니엘이 등장합니다.

다니엘도 연로했습니다.

아마도 요한과 나이가 비슷했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요한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이 다니엘서를 많이 참조했겠죠.

물론 내용을 참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위기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다니엘 10장 1-12절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다니엘은 금식을 했는데 완전 금식을 한 것은 아닙니다.

3절에 보면 좋은 떡을 먹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좋은 떡이란 아마도 유교명을 뜻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떡이 아닌 것은 무교병을 말할 것입니다.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였다는 고기와 포도주를 금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채소를 먹지 않았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쓴 나물을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무교병과 쓴 나물로 3주를 버틴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니엘이 걱정이 되어겠죠.

저러다 큰 일 날지도 몰라!

걱정반 근심반으로 사람들은 다니엘과 함께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때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습니다.

그의 몸은 황옥 같았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았습니다.

그의 눈은 횃불 같았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았고 그의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와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나는 이분이 성자 예수님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르게 보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장면을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환상일까요 아니면 실제 장면일까요?

나는 실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을 터치합니다.

다니엘이 새 힘을 얻었습니다.

똑같아요.

요한계시록의 예수님과 여기에 나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아주 똑같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우리가 보는 세상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끝을 보겠죠.

그 때쯤이면 우리모두 세상에 없겠지만요.

세상은 돌고 도네요.

사람들은 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요.

오세훈 씨가 서울 시장 노릇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줌마 부대들이 잘 생긴 것 하나로 뽑아 주었겠죠.

그냥 평타만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나라가 참 이상한 나라죠.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거쳐 왔어요.

일경(순사), 고등계검사, 사업가들이 있었죠,

그리고 한 편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있었요.

이들이 해방 후에 남북 분단으로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다 살아 남아 미군정 시절을 보내죠.

한 때는 민족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나섰던 이승만 씨가 대통령이 되었어요.

과거는 묻지 마세요.

이씨 가문의 왕족으로 충분했어요.

그 시대에 우리 민족은 무학이었어요.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사람들이었죠.

이승만 씨는 별짓을 해서 살아남았죠.

문제는 이기붕이었죠.

이기붕만 아니었으면 천년만년 종신왕이 될 수 있었잖아요.

이기붕씨도 이씨네요.

 

아직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는 절차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선거에 이기면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오지 않고 있어요.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열의가 없어요.

촛불 집회를 생각만 하면 민주주의가 진보가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인이 그 열매를 똑 따먹었죠.

그런데 하는 일이 무엇이 있나요.

우리는 아직도 멀었어요.

 

이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어요.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우리의 책임이죠.

200년전에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만드셨죠.

물론 정조대왕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에요.

정조대왕의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거죠.

거기에 군관민이 모두 나서서 이 아름다운 성을 만들었죠.

누군가 이렇게 창조적인 사람이 세상이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한 때는 장산곶매를 외치는 백기완 선생님을 존경했어요.

그분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세상은 바뀌었겠죠.

그런데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요.

자기 기준에 사람을 뽑는 거죠.

자기가 배운 만큼 보게 되어요.

 

우리는 괄호 안에 살아요.

주님의 괄호 안에 살죠.

주님을 놀랠킬게 없죠.

우리는 주님의 괄호 안에 살고 있고 있기 때문이죠.

주님은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처음과 마지막 속에 살아가요.

어떻게 살아가든 각자의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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