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요한계시록

1장 14절

기독항해자 2021. 3. 22. 16:12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요한은 예수님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도 눈 같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시편 133편을 생각하게 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대제사장의 위임식 때 모세는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관유의 재료들은 두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범주는 네 가지 향품-몰약, 육계, 창포, 계피-입니다.

두 번째 범주는 기름입니다. 

 

몰약은 향기롭지만 맛은 씁니다.

액체 몰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몰약은 주로 장사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요19장에 따르면, 니고데모와 다른 이들은 주 예수님의 몸을 장사지내기 위하여 몰약을 사용했습니다. 

 

육계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달콤함과 효능을 의미합니다.

육계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장을 자극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육계는 약한 심장을 자극하는 데 처방됩니다. 

육계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능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에게 작용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고통을 감소시킬 것이며, 나쁜 분비물들을 고쳐 줄 것이며, 결국에는 우리를 자극시켜서 우리를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 것입니다. 

 

향기로운 창포는 갈대를 말합니다.

몰약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 뜻은 흐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창포의 원 뜻은 일어선다는 것을 뜻합니다.

창포는 늪이나 진흙땅에서 자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늪에서 자라지만 공중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향품의 배열에 따르면, 이 창포는 죽음의 곳에서부터 일어나신 주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늪, 즉 죽음의 상황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셨으나, 부활 안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계피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의미합니다.

계피와 육계는 같은 종에 속합니다.

육계는 껍질의 속부분에서 나온 것이고, 계피는 껍질의 겉부분에서 나온 것입니다.

육계와 계피는 모두 달고 향기롭습니다.

게다가 그것들에서 파생된 식물들은 다른 식물들이 살 수 없는 곳에서도 종종 살고 자랍니다.

계피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효능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환경도 저지할 수 있으며, 그분의 부활은 물론 방충제입니다.

그것은 모든 악한 곤충들을 퇴치하며 특히 옛 뱀 마귀를 퇴치합니다.

 

성경에서 감람기름은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감람기름은 감람열매를 눌러짜서(압착해서) 만듭니다.

감람기름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압력을 통과하여 흘러나온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감람기름이 관유의 기초입니다.

그것은 향품들이 복합되는 근본 성분입니다.

네 가지 향품들은 관유가 되기 위하여 감람기름 안으로 배합되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은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는 주권자이시고, 머리털과 수염은 명예와 영광의 모습입니다. (삼하10:5) 

그리고 흰 색은 순결과 승리의 상징 색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거룩한 주권자로 그리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왕으로 오시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나라에 오셨을 때 유대와 로마는 참 주권자 예수를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세상 주권으로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를 때리고 가시면류관을 씌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만왕의 왕의 면류관을 쓰시고 백마를 타시고 존귀와 위엄과 영광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예수님의 거룩함과 영광 앞에 세상은 그 더러운 불의를 전부 드러내고 결국은 심판받고 멸망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다니엘서 7장 9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두 개의 책은 다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다니엘서는 묵시문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이 말씀은 70인역으로 읽었고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구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눈 같고 양의 털 같고는 차이가 없습니다.

옷의 희기가 눈 같고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다고 한 말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당연히 인용하는 사람이 개정할 수 있습니다.

개정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도 눈 같다고 한 말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몸을 들어내서는 안 됩니다.

다 덮어야 합니다.

얼굴과 손 만 내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양의 털 같다고 한 것은 같다고 했지 꼭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옷의 희기가 눈 같다란 다니엘서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요한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실제 모습이 양의 털 같고 눈 같다고 표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의 한 구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사야 1장 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논쟁하는 장면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은 빈손을 가지 않았습니다.

십일조 봉투, 감사헌금, 각종헌금봉투를 준비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생활은 하나도 안 바뀌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토라가 있었습니다.

그 토라의 말씀이 무시된 것입니다.

대신에 그 자리에 일요일마다 예배하고 각종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것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말씀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산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눈과 같이 희어지는 일, 양털 같이 희게 되는 일은 종교행위로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이 오늘 요한계시록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갈아 엎어야 합니다.

그 위에 말씀의 싹을 틔우고 꽃을 맺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이세상에는 숨겨진 것도 많고 감취어진 것도 많습니다.

온갖 비리와 부정이 드러나지 않고 역사 속에 묻혀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잘 속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치나 경제계 또는 교육계와 사회 각 부분의 비리는 그 얼마나 많습니까?

비리가 드러나면 바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모로쇠로 일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요?

나는 잘 할 수 있을까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 이 시간 그런 외적인 모든 분야를 떠나서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지난 과거의 행적과 모든 생각들을 돌아다 본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비밀은 드러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눅8:17)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때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살펴 보시는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다 하셨습니다.
이 불꽃은 어둠을 밝히고 숨겨진 것을 드러냅니다.

감취어진 것을 남김없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불꽃입니다.

그 때 다 드러날 것입니다.

모든 감취었던 것들이...

내가 정말 제대로 살았는지 그때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눈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세계를 통찰하시는 눈입니다. 

그리고 불꽃같은 눈은 모든 어두움을 드러내고 태우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이 세상을 지금도 통찰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이 세상을 통찰하심은 이 세상의 모든 죄악들을 그 근원까지 드러내고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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