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573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6

2:8-11 서머나 교회는 그 아름다움과 오랫동안 변함없이 로마에 바친 충성으로 유명한 항구 도시에 자리해 있었다. 이 도시는 왕성한 황제 숭배로 로마에게 충성을 표현했다. 이 도시는 유명한 순교자 폴리갑(폴리카르포스) 주교가 순교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156년경 예수께 충성한다는 이유로 여기서 죽임을 당했다. 일부 유대인이 경제력을 쥔 사람들(오늘날 노조와 비슷한 상인 조직인 상인조합에서 일하는 관리나 신전에서 일하며 은행 역할도 했던 관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를 핍박하던 로마 정부 관리와 한 통속이 되어(요한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 백성이라는 유대인의 독특한 정체성을 저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법률상 처분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 때문에 현실..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5

요한계시록의 신학: 개관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으려면 요한계시록 전체를 아우르는 해석의 틀 혹은 해석학적 틀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어낸다. 요한계시록의 목적을 밝혀 내기 대다수의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 세상 종말을 미리 알려주는 예고편 DVD라고 해석한다. 이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 마지막 때의 일을 다루는 종말론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성경 마지막 책인 이 책은 종말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를 깊이 파 들어가면 요한계시록이 겨냥하는 궁극의 초점은 종말론이 아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발견하는 종말론도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다. 요한계시록의 의도는 시련과 시험의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어, 이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끝..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 4

3. 세 번째 접근법은 요한계시록을 시 또는 신학시로 보는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이 접근법을 따르는 이들은 요한계시록이 신화 혹은 시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악과 역사 등에 관한 큰 진리들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이 접근법은 가끔씩 이상주의자의 접근법이나 영적 접근법이나 비역사적 접근법이나 시간을 초월한 접근법 또는 시간을 관통하는 접근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접근법은 요한계시록을 예언으로 보는 접근법이 범하는 해석 남용 사례들과 요한계시록을 순전히 그 시대 역사를 놓고 말한 것으로 보는 접근법에 대응하면서 늘 다소간 반동 성향을 띠었다. 3세기 알레고리 성경 해석의 거봉이었돈 오리게네스 같은 교부들은 물론이요 그 정도는 덜했지만 티코니우스라는 해석자가 남긴 작품을 토대로 해석을 펼쳐 보인 아우..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3

복을 선언하는 책 요한계시록에 복 내지 지복을 선언하는 본문이 일곱 개 등장한다. 이것들은 요한계시록이 가진 예전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 차원이지,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려고 집어넣은 장식품이 아니다. 복 내지 지복을 선언하는 이 본문들은 어린 양 예수가 다시 오시는 것과 더불어 종말에 있을 축하연-새 예루살렘에서 있을 어린 양과 그의 신부인 신실한 교회의 혼인 피로연-을 기대하는 가운데 이 예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라는 요한계시록 메시지의 핵심에 자리해 있다. 신실한 자들은 복이 있다.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2.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2

예언 요한계시록은 다섯 번에 걸쳐 자신을 예언의 책이라고 부른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하는 행동을 예언이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예언적 책이라고 생각한다. 요한계시록이 예언적 책이란 생각은 세대주의가 만들어내고 힘을 실어준 것이다. 세대주의는 19세기에 시작한 신학 운동으로 역사를 여러 세대 혹은 여러 시대로 나누고 각 세대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다루신다고 주장한다. 세대주의는 종말론에 휴거교리 곧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전에 참 신자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는다는 교리를 포함시킨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기독교는 이런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 대중에게 세대주의를 널리 퍼뜨린 것은 스코필드 주석 성경과 홀 린지(Hal Lindsey)가 쓴 작품들(대 유성 지구의 종말), 그리고 ..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1

2장 우리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의 형식 고먼은 성경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쓴 작품과 일반 저자들이 쓴 작품의 제목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 장을 시작한다. 많은 책들이 미래에 관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종말론)에 초점을 맞춘다. 종말 Scott Hahn 요한계시록 : 마지막 때 수수께끼를 풀다 Bruce Bickel and Stan Jantz 하나님의 장엄한 피날레 Hilton Sutton 드러난 휴거 :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소망의 메시지 Barbara Rossing 마지막 날들을 바라보는 산 소망 John MacArthur 다른 제목들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요한계시록의 핵심 이미지)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가리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책 Daniel Harrington 승리하신 그리..

마이클 고먼을 따라 읽기

마이클 고먼이 쓴 책을 읽었다. 이글은 마이클 고먼의 글을 따라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자는 취지로 쓴다. 마이클 고먼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가르치고 설교하는가가 그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영혼, 그리고 심지어 육체와 경제적 안녕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해석은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진지하고 신성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시대 정황이 달라져도 늘 신선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다. 고먼은 "요한계시록의 경우에 어떤 해석들은 다른 해석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실은 기독교에 부합하지도 않고..

목적

저자가 글을 쓰려면 먼저 글을 쓰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모든 글에는 다 목적이 있다. 목적이 없는 글은 논지를 잃게 되고 결국 잡문에 불과하게 된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목적을 발견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요한계시록은 서신서다. 서신서지만 묵시문학에 속하기도 한다. 서신서라는 것은 독자가 특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소아시아 7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이다. 보내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은 대필자이다. 그렇다면 요한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불러주는 대로 적기만 했을까? 왕정시대에는 적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기만 할 때, 적는 사람은 자기 견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요한은 자기 생각을 죽이고, 불러주는 대로 적기만 하지 않았을까? 주님은 왜 요한계시록을 보내야만 하셨을까..

저자 문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1:4, 11). 저자는 자신을 단지 요한으로 밝히고 있습니다(1:1, 4, 9; 22:8). 전통적으로는 사도요한을 본서의 기록자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3세기 때, 오리겐의 제자인 디오니시우스로부터 저자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이란 이름과 관련하여 떠올릴 수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도 요한과 마가 요한 그리고 소아시아의 기독교인 예언자 요한 등이 있습니다. 이 이름의 헬라어 형태는 “요안네스”(Ioannes)(눅 1:13)인데, 이것은 흔히 있는 히브리 이름 “요하난”(Yochanan, Johanan)의 음역입니다. “요하난”이란 이름은 구약의 후기 책들과 외경과 요세푸스의 문헌에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은 본래 책 제목이 없었습니다.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만 책 제목이 후대에 붙여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란 요한이 쓴 계시록이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이라고 붙인 이유가 1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본래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왜 헬라어로 기록했을까요? 아마도 기독교가 유대교와 갈라선 다음에 대부분의 신약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대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