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요한계시록

1장 5절

기독항해자 2021. 2. 24. 10:40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또 충성된 증인으로

요한은 줄을 바꾸어 보내시는 세 번째 인물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충성된 증인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늘 나라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충성스럽게 증인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시어 증인의 역할을 몸된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증인의 역할을 잘 하도록 성령을 보내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신앙고백적 단어들의 나열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처럼 초대교회 신자들도 신앙고백을 하였을 것입니다.

신앙고백적 표현이 바로 이 단어들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란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보다, 다윗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부활의 첫열매가 되셔서 모든 잠자는 자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옷과 같이 이 우주가 다시 갈아입을 날을 고대합니다.

예수님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이십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왕이자 동시에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천만 성도와 24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역사 이래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다 살아 부활한다고 가정해 보면 이 지구는 그들을 감당하기에 좁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새예루살렘성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4-27절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 성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책이 이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책이 기록된 사람들은 왕들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입니다.

왕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왕만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왕이 아닌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별들을 분양하십니다.

별들을 잘 다스리도록 맡기십니다.

별에서 예루살렘성으로 여행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현하는 것입니다.

별에는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불신자들이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별들을 다스리고 그 나라의 신민들은 불신자들입니다.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여행하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출입금지의 지역입니다.

제 생각입니다.

나는 오늘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왜 하나님은 무한한 우주를 만드셨을까?

그리고 하고 많은 별 중에 행성도 아닌 혹성 지구에 인류를 살게 하셨을까?

저 많은 별들을, 인류보다 많은 별들을 그냥 놀리려고 만드신 것은 아니지 않을까?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인사말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이 편지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인사말은 단순히 인사를 하는 말이 아닙니다.

편지를 쓰는 이가 마음을 담아 쓰는 말입니다.

말미암아라고 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리는 인사말입니다.

일종의 축도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카리스라는 헬라식 인사말입니다.

은혜는 조건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뜻합니다.

은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카리스’(χάρις)는 ‘은혜, 기쁨과 즐거움, 선한 의지, 사랑, 호의, 긍휼, 은혜의 선물, 자비, 감사, 보답’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사형으로는 ‘카이로’(χαίρω)인데 ‘즐거워하다, 기뻐하다, 잘 되다, 번성하다, 안부를 묻다, 인사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어인 ‘은혜’(χάρις)는 히브리어로 ‘헨’(חן)이라는 단어인데 ‘호의, 우아함, 매력, 자비, 은혜’ 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은혜가 앞에 오고 평강이 뒤에 옵니다.

은혜를 받아야 평강이 옵니다.

평강은 마음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인간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사물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물관계가 회복됩니다.

이렇게 회복된 상태가 평강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우리를 사랑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합니다.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고 사랑 때문에 죽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신 일이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 살아가던 우리들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인생으로 돌려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상은 우리에게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상은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철로 위를 달리는 철마는 철로가 구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향해 힘차게 철로를 벗어납니다.

철로를 벗어난 철마는 좌초합니다.

자유라고 생각한 게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철마는 철로를 달릴 때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비행기도 항로가 있습니다.

항로를 따라 날아가는 비행기는 구속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는 항로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고 싶어 합니다.

비행기는 마침내 항로를 벗어나 날아오릅니다.

항로를 벗어난 비행기는 결국 다른 비행기와 충돌하고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항로를 따라 비행할 때만 비행기는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구속과 죽음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 길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라면 구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추구합니다.

말씀을 벗어난 삶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파선하게 됩니다.

마음대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술중독에 파선합니다.

마음대로 흡연하던 사람들도 폐암으로 파선합니다.

마음대로 먹던 습관이 사람들에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란 파선의 길로 이끕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대로 사는 삶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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