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로마 제국의 속주로 행정 지역명이었습니다.
지금의 아시아주와는 다릅니다.
아시아는 터키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로마의 행정 지역명입니다.
"아시아"(Asia)라는 말은 그리스어 "Ἀσία"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최초로 아시아란 말을 쓴 사람은 헤로도토스입니다.
기원전 440년경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와 이집트에 대비되는 지역 개념으로 페르시아 제국(현재의 이란)을 가리키거나 아나톨리아 지방을 뜻하는 말로 '아시아'를 처음으로 썼다고 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논평하기를, 거대한 세 땅덩어리에 왜 여성 이름(에우로페,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지칭하는 리비아)이 쓰이는지 의아스럽다면서, 그리스인 대부분은 아시아라는 이름이 프로메테우스의 부인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나, 리디아 사람들은 이 이름이 사르데이스의 한 부족 이름에서 나온 코티스(Cotys)의 아들 이름인 아시아스(Asias)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노라고 쓰고 있습니다.
헤로도토스 이전에는 호메로스가 트로이아의 동맹인 아시오스(Asios)와 그가 어느 늪을 묘사할 때 쓴 아시오스(ασιο?, 일리아스 2, 461)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리스어 낱말은 아마도 기원전 14세기에 서부 아나톨리아에 있던 연합 국가 앗수와(Assuwa)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히타이트말로 "앗수-"(assu-, "좋은")가 이 명칭의 일부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아시아 이전의 지명은 리디아라고 불렸습니다.
리디아는 에게 해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간 헤르무스 계곡과 카이스테르 강 유역에 걸쳐 있었습니다.
이 리디아인들이 금화와 은화를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주화).
BC 7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잠시 소아시아를 지배하는 동안, 리디아인들은 서쪽으로 이오니아계 그리스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BC 7세기에 리디아는 킴메르족의 프리지아 파괴로 생긴 공백을 메우고, 전설적인 기게스 왕의 통치 아래 사르디스에 왕조를 세웠습니다.
왕국은 알리아테스 왕(BC 619~560경) 때 전성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메디아의 위협을 가볍게 피했고, 킴메리족을 밀어냈으며, 그의 영역을 이오니아까지 넓혔습니다.
이 왕국은 알리아테스의 아들 크로이소스 때 더 큰 규모로 성장했으나 키루스가 거느리는 페르시아인들은 리디아 왕조를 극적으로 멸망시켰다고 합니다(BC 546경~540).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리디아인들은 그리스인들과 비슷한 관습을 가졌으며, 상업민족으로서 영구적인 소매상점을 맨 처음 만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발명한 금속 주화는 그리스인들이 재빨리 도입하여, BC 6세기에 그리스 문명을 변화시킨 상업혁명의 촉매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리디아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가 에페수스입니다.
유럽의 신전하면 그리스의 파르테논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욱 인상 깊게 느낀 신전은 터키에 있는 에페수스 신전입니다.
에페수스 신전이 고대인들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주었는지는 기원전 3세기 필론이 뽑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료에 의하면 에페스(에베소, 에페수스)의 건설자는 아테네 왕 코드루스의 아들인 안드로클로스입니다.
그는 신탁이 예언해준 생선과 야생 곰이 안내한 카이스테(작은 멘테레스 강)가 바다로 유입되는 해안가에 에페수스를 건설했습니다.
에페수스는 ‘대지의 여신의 도시’란 뜻으로 아르자와의 왕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인 ‘아파사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처음에 토착민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았으나 결국 그들을 복종시키고 아나톨리아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건설한 도시들은 프리네, 밀레투스, 테오스, 키오스, 클라조메내, 미우스, 사모스, 포카에, 레베두스, 에페수스 등이 있습니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했으나 네 개의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오니아의 도시들은 초기에는 왕들이 지배했으나 후에는 몇몇 사람이 국가를 지배하는 과두정치로 변모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유명한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웁니다.
당대에도 유력한 지역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인데 그들이 섬기는 신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리스는 아테네 여신을 섬겼지만 아나톨리아에서는 아르테미스를 섬겼습니다.
크고 작은 수많은 만(灣)들이 산재한 서부 아나톨리아의 해안선은 해상 교역을 위한 천혜의 장소였습니다.
포에니아인들은 해상무역을 독점했는데 심지어는 50여 척의 배로 이집트와 무역을 하고 흑해와 마르마라 해에는 식민지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후에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남부 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이오니아가 모든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된 이유는 신탁의 중심지인 디디마 신전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디아인들은 6~7세기에 금(60퍼센트)과 은(40퍼센트)을 혼합해서 만든 동전을 도입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최초의 독재 정치가 시작되었는데 ‘독재(Tyrant)’란 말은 리디아에서 온 것이며 ‘군주(Lord)’를 뜻합니다.
이 아시아 지역에 일곱 개의 유명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들 도시에는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들 유대인들은 정착한 도시에 회당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회당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약 시대 팔레스티나를 비롯하여 로마제국 전체에 퍼져 있던 회당은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성장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설교자로서 회당에 자주 초청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적인 사명을 시작하신 후에 자주 회당에 가시어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아픈 이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기독교 초기에도 유대계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회당 예식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회당을 거점으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회당의 전통적인 기능은 그것이 갖고 있는 3가지 히브리어 이름인 베트 하테필라(기도하는 집), 베트 하크네세트(집회하는 집), 베트 하미드라시(학습하는 집)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1세기 문헌에 따르면 회당들은 팔레스타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그리스·이집트·바빌로니아·소아시아 등지에도 많았습니다.
1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유대인 공동체은 회당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매일 아침·점심·저녁에 예배를 드렸으며, 안식일과 종교 절기들에는 특별한 의식을 행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의 일곱 도시들을 방문할 때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왜 일곱일까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곱 교회의 모습은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일곱 교회의 모습을 일정 정도는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완전한 모습의 에베소 교회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교회를 존재할 것입니다.
일곱 교회의 모습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모습이 현실 교회의 모습입니다.
일곱 교회는 만국 교회의 모든 교회들을 포괄하고 있는 대표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일 뿐만 아니라 일곱 교회의 모습을 일정 정도 갖고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보내시는 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영원히 계시는 분은 야웨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여호와는 잘못된 발음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은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부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놀라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 19도 지나고 나면 언제 이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섭리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 역사가 지구별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달까지 여행을 한 적은 있지만 달에서 인류가 생존한 것은 아닙니다.
인류는 지구별에서 지지볶고 생활하다가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도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여기에 나오는 구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일곱이란 숫자는 일곱 교회의 일곱에 대응하는 수입니다.
성령께서는 지상의 모든 교회와 관계하여 사역하심을 뜻합니다.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요한은 아시아의 일곱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랜드 종합은 일곱 교회를 형식적이란 말로 풀이를 합니다.
일곱 교회는 형식상의 일곱 교회가 아니라 실제상의 일곱 교회를 말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보편 교회에 적용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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