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고린도전서

4장 9-13절

기독항해자 2019. 3. 12. 18:2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왜 이 말을 사도는 하고 있을까요?

사도는 현재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다고 말합니다.

사도니까 당연히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사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가 구경거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선교 100년이 넘었습니다.

큰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큰 교회 목사들은 대접도 남다릅니다.

큰 교회 목사들은 성공한 목사로 떠 받들어집니다.

성공했다는 말은 인본주의적인 말입니다.

그 사람이 잘나서, 남다른 노력으로 이렇게 됐다는 말입니다.

성공했으니까 성공한 만큼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순회선교사였습니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서 목회하는 목회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순회선교사로 지역을 옮길 때, 항상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하니까

사도 바울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시대가 넉넉한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파송 교회에 손을 벌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숙식을 해결하려면 수고해야만 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웠을까요?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교도들이 넘쳐 나던 시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욕을 당했습니다.

모욕을 당한다고 같이 맞받아칠 수도 없었습니다.

모욕을 당한즉 축복했습니다.

모욕을 당할 때 김치하고 웃어주어야만 했습니다.

모욕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박해까지 있었습니다.

박해한다고 같이 박해를 하나요!

박해를 당할 때 꾹 참았습니다.

이게 바로 사도들이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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