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 서신서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지금처럼 고린도 지역에 있는 특정한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린도 도시에 사는 아무개의 집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린도는 헬라의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이 시대에 지혜를 대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 철학이라는 말을 합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지만 헬라는 철학의 도시 국가였습니다.
이들이 가르치던 학문 중에 하나가 수사학이라는 것입니다.
수사학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을 말합니다.
수사학은 웅변술이라고 말합니다.
수사학은 웅변을 체계화한 분야를 일컫는 말입니다.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웅변가들에게 토론이나 대중 연설시에 말을 잘하는 법을 훈련하는 데 적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겠습니다.
설교도 남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수사학이 필요하겠죠.
고린도 사람들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좋아했겠죠.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달변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복음은 내용이 중요합니다.
내용을 살려면 그것을 포장하는 말의 기술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설교되는 말을 잘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말고식입니다.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해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전하는 설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에 그 당시에 유행하는 수사학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용이 중요하면 포장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죠.
그런데 요사이 무슨 선물입네 하는 것을 보면 과한 게 없지 않습니다.
내용물은 빈약한 데 그것을 싸고 있는 포장지는 어마 무시하죠.
사도 바울이 전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복음 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십지가 복음을 전할 때 액면 대로 전한 것입니다.
부풀리지 않았습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전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폭력적인 언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애써서 설득 하려고 한 것 아닙니다.
한 번 믿어 주세요라고 한 것 아닙니다.
그냥 십자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 십자가 복음을 들을 때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설교는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데려갑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볼 때 나를 보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볼 수 있게 됩니다.
나의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거기서 회개가 일어납니다.
설교는 나를 십자가 앞으로 데려다 줍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래서 내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능력 아래 있는 믿음입니다.
설득 당하는 게 아닙니다.
두나미스에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두나미스에 당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다이너마이트의 폭발과 같은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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