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3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가 무엇을 정결하게 해줍니까?
육체를 정결하게 해줍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로는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속 사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여전히 욕망덩어리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외식덩어리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린 이런 사람들을 율법주의자들 중에 쉽게 찾아보게 됩니다.
법을 잘 지킵니다.
그래서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을 만나면 비난합니다.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원래 법대로 하면 남자도 같이 끌고와야 하죠.
그런데 여자만 끌고왔습니다.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 여자를 끌고 온 사람들은 자신이 이 여자와는 다른 괜찮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괜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입니다.
예수님을 죽여야만 자신들이 여전히 괜찮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니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니까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뒤집어집니다.
종교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은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종교생활을 잘 하면 괜찮아 보입니다.
거기까지입니다.
육체를 정결하게 할 뿐입니다.
마음은 아닙니다.
종교생활를 잘 한다고 마음이 변하는 것 아닙니다.
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우리의 양심을 새롭게 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게 보혈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전인적인 개조가 일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하나님은 섬기는게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있던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율법 조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집중합니다.
율법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죠.
그래서 사도요한이 말년에 사랑만 외친 것입니다.
15절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보기가 드믑니다.
그래서 진짜는 귀합니다.
우리는 가짜가 넘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진짜냐는 것입니다.
가짜 목사도 많습니다.
가짜 장로도 많습니다.
가짜 성도도 많습니다.
내가 진짜냐는 것입니다.
가라지도 많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서 있는 곳이 사단의 회로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교회가 서 있는 곳이 지옥 문 앞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땅에 속한 것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에 지금도 아등바등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짜입니다.
땅에 속한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족하지 않게 주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넘치도록 주신다면 그것은 사랑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넘치도록 주신 것, 그것 다 셈할 때가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