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히브리서

9장 1-5절

기독항해자 2018. 8. 5. 09:06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오늘은 성막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것은 동쪽을 바라보면서 12지파의 중앙에 있었습니다.

구름이 그 위에 드리워져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안에 계속 거하셨습니다.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길이가 100규빗이고 너비가 50규빗 되는 바깥 뜰입니다.

이 뜰은 세마포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뜰 안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은 번제물을 태우는 단을 말합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씻기 위한 물을 담아 넣은 항아리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울타리 막 안의 서쪽 끝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는 덮개로 덮혀 있었습니다.

길이가 20규빗이고 너비가 10규빗인 성소에는 향단과 진설병을 올려 놓은 떡상과 황금촛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4개의 기둥 위에 드리워진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의 경계가 되었습니다.

길이가 10규빗이고 너비이가 10규빗인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놓여 있었고 그 위를 속죄소와 그룹이 덮고 있었으며 영광의 구름이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산에 있을 때 성막의 전체적인 모형과 각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를 자세히 지시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시하신 모든 식양대로 작은 못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하게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여러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집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식양을 친히 지시하신 것입니다.

충성된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성막과 그 안이 모든 기구들이 만들어지는 순서나 설치하는 순서는 "안에서 밖으로"하도록 모세에게 명해졌습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가 제일 먼저 시작되었으며 바깥 뜰과 출입문이 맨 나중에 끝났습니다.

이 순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람까지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오신 길을 상기시켜 줍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베들레헴의 구유를 거쳐 갈보리 십자가의 길, 주님은 바로 거기서 죄인들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그 진리를 깨닫는 순서는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우리는 출입문을 통과하여 바깥 뜰의 놋제단과 물두멍을 지나 하나님 보좌 앞까지 나아갑니다.

 

성막전체 모습(투시도/ 평면도/성물위치도/칫수)

바깥 뜰

바깥 뜰은 열린 공간으로서 길이가 100규빗, 너비가 50규빗이며 56개의 기둥에 부착된 세마포장의 울타리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각각의 기둥은 놋받침 위에 세워졌으며 기둥의 맨 윗 부분은 은으로 입혀져 있었습니다.

은으로 된 갈고리는 포장을 지지해 주고 은 가름대는 기둥 사이를 연결해 줍니다.

그래서 은줄과 세마포장은 끊어진 곳이 없이 계속 이어져 뜰 주위를 빙 두르고 있었습니다.

 

울타리의 동쪽 편에 있는 출입문은 너비가 20규빗이며, 4개의 기둥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장이 매여 있었습니다.

이 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입니다.

누구든지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대로 복종해야 합니다.

 

 

시편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기둥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추신 비밀이나 침묵을 지키시는 사항에 대해서는 굳이 캐낼 필요가 없습니다.

침묵은 그것들로부터 눈길을 돌려야 함을 뜻합니다.

놋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며 은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의미합니다.

 

뜰의 울마리 막은 세마장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계시록 197,8절에 보면 "어린 양의 신부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마포는 의를 상징합니다.

 

출입문

성막의 출입문은 동쪽을 바라보면서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장막 앞의 뜰 중앙에 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동쪽은 떠오르는 햇빛과 연관되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의 광선은 자연히 문이 있는 곳을 가장 먼저 비추게 되며 이것은 출입문의 색깔을 드러냄과 동시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뒷문이나 옆문은 전혀 없으며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는 자는 반드시 빛에 노출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천성적으로 어두움을 사랑합니다.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빛은 이러한 인간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드러내 줍니다.

출입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출입문은 왜 하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문을 마련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에 회의를 품고 그것을 비판합니다.

하나의 문만을 주장하는 것을 편협한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진리만을 옹호하는 것을 좁은 마음으로 낙인찍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잃어진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예수님 이름밖에 없습니다.

 

출입문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 문을 통해서 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출입문은 낮았지만 넓었습니다.

그것은 높이는 5규빗이었으며 너비는 20규빗이었습니다.

반면에 성소의 문은 높이가 10규빗, 너비가 10규빗이었습니다.

이 문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히 넓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입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바깥뜰을 만나게 됩니다.

 

성막의 뜰 안에는 번제단과 놋대야가 성소의 문과 뜰의 출입문 사이에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성소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기구들과는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대조를 이룹니다.

번제단과 놋대야(물두멍)은 뜰 안에 노출되어 있어서 모든 지파들이 이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장소에서 행해지는 봉사는 공개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성소 안의 기구들은 성소 안으로 들어간 제사장들만이 볼 수 있었습니다.

 

번제단과 놋대야는 구리 혹은 조각목과 구리로 만들어졌는데 비해 성소 안의 기구들은 금 혹은 조각목과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구리는 심판의 하나님을 뜻하지만 금은 영광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바깥뜰에서는 죄와 부정함을 다루시는 의의 하나님을 보여주는데 비해 성소 안에서는 자신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성도들에게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밖의 기구들은 이 땅에 계셨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이루어 놓으신 모든 사역을 상징합니다.

안의 기구들은 부활하신 후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자신의 성도들은 위해 지금도 계속 수행하고 계시는 그분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번제단과 놋대야를 거치지 않고는 어느 제사장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처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금향단이 없이는 어느 제사장도 성소 안에 계속 있을 수가 없습니다.

 

번제단

바깥뜰의 번제단은 희생의 장소였습니다.

"죽인다"란 뜻을 지닌 낱말에서 온 "제단"은 도살의 장소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번제단은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희생제물이 필요한 데,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바깥뜰의 출입문에서는 죄인들이 서 있으며 서쪽 끝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피와 물은 그 사이에 있었으며 이것들은 죄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전에 속죄와 깨끗이 씻음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단 위에는 불이 있었습니다.

그 불은 항상 꺼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불은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우리의 죄가 소멸하든지 우리 존재가 소멸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가 소멸됩니다.

그렇지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소멸하게 됩니다.

 

번제단은 정사각형이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동등을 의미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사람을 그리스도는 동등하게 대해주십니다.

 

번제단은 땅 위에 서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번제단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태에 있는 죄인이라도 그것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번제단은 조각목과 구리로 만들었습니다.

조각목만으로 불에 견디지 못합니다.

구리가 내구력과 저항력을 주었습니다.

조각목은 "썩지 않는 나무"라고 불립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합니다.

구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조각목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를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는 아까시 나무라고 합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따로 있는 것입니다.

성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무가 바로 아카시아 나무 곧 조각목입니다.

싯딤나무라고도 말하는데 흔히 메마르고 황량한 광야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햇빛으로 고통당하는 나무이며, 모래로 상처받은 나무이며, 바람으로 인해 서로 찔리는 광야에 버려진 가치 없는 나무입니다.

 

조각목

 

조각목은 가시가 돋고 단단하고 질긴 것이 특징입니다.

조각목은 성막의 거의 모든 기구에 쓰였습니다.

전체가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과 놋으로 만들어진 것 이외에는 모두 조각목에 금을 입혀서 사용했습니다.

조각목은 잘 생기거나 반듯하게 자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상수리나무, 백향목, 잣나무 등 귀히 쓰임 받는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나무들은 반듯하게 자라는 나무들이었으므로 성막에 사용될 때에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나무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독 조각목을 성소에 사용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아카시아나무는 아주 질긴 나무입니다.

또한 바람에 잘 견디고 동물들이나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시가 나 있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긴 성격으로 인하여 이 나무를 성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아카시아 나무는 그대로는 사용될 수 없었습니다.

성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그렇게 큰 나무는 아닙니다.

이 나무는 잘 다듬고 나면 널빤지 한 장이 나올까 말까 했습니다.

성소 벽을 만드는 널빤지는 한규빗 반(70cm)이고 길이가 10규빗(4.5m)이었습니다.

귀족적으로 잘 자라는 백향목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조각목으로 성물을 만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아카시아 나무가 성물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택함 받고 잘리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그런데 이 아카시아 나무는 뿌리가 잘 퍼져 나가서 그 주위에 있는 나무들까지 생명의 위협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에서도 잘 자라지만 일단 퍼져나가면 그 주위의 생태계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생명력이 뛰어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한 조각목의 뿌리가 다른 식물들의 뿌리까지 감으며 영향을 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카시아 나무의 죄 성은 무척 큽니다.

이 죄 성은 다른 나무의 뿌리까지 죽여 버릴 정도로 악하고 뿌리가 깊습니다.

이러한 죄 성은 무섭게 퍼집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잘려야 합니다.

우리의 죄 성은 땅으로부터 단절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 성의 뿌리가 땅으로부터 잘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성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아카시아 나무는 껍질이 벗겨져야 합니다.

모든 성물이나 제사 때 쓰이는 제물은 껍질이 있는 체 그냥 사용되지 않습니다.

우선 껍질이 벗겨져야 합니다.

그 과정은 아카시아 나무로서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땅으로부터 잘려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아픔도 크지만 자신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더 큰 고통입니다.

 

그 다음으로 아카시아 나무는 말려져야 합니다.

껍질을 말리는 것이 겉을 말리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물을 말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속까지 잘 말리는 작업입니다.

속과 겉이 모두 말려지고 다듬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성물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작업은 울퉁불퉁한 모습이 반듯한 모습으로 되기 위해 대패질을 받는 것입니다.

곧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대패질은 불필요한 부분들을 다 밀어내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껍질을 벗겨내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과 인내와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패질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은 아주 작은 조각목, 널빤지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가시와 잎으로 무성했던 아카시아는 결국 작은 널빤지 한 장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마친 조각목에게는 금으로 입혀지는 마지막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정금으로 덧입혀질 때에야 비로소 성소와 지성소에서 주님의 성물로 사용됩니다.

이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됩니다.

 

번제단의 네 귀퉁이에는 뿔이 있었습니다.

뿔은 성경에서 종종 권세를 나타냅니다.

번제단의 이 뿔들은 아마도 희생제물이 산체로 여호와께 드려졌을 때 그것을 묶는데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편 118: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범죄자들은 제단이 있는 곳으로 도망가 그 뿔을 붙잡음으로써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뿔을 구원의 뿔이라고 부릅니다.

번제단의 가운데에는 구리로 된 그물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높이는 속죄소의 높이와 똑같은 한 규빗 반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많이 듣지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공의는 똑같이 중요합니다.

 

번제물은 이 그물망 위에 놓여진 후 거기서 불살라집니다.

그물망 아래로 떨어진 재는 제사장이 치웠습니다.

 

당신은 한 사람이 이른 아침 일찍 살아있는 희생제물을 데리고 하나님의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는 출입문을 지나 그 타오르는 불꽃 앞에 섭니다.

거기에서 그 희생제물을 죽이고 껍질을 벗깁니다.

 

그 다음 그것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망 위에 벌여놓으면 그것은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그것은 향기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몇 시간 후 당신은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이 재가 가득담긴 구리 양푼을 손에 들로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재는 진 바깥으로 가져가서 정결한 곳에 소중히 보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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