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사무엘상

29장 6~11절

기독항해자 2017. 11. 26. 09:54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아기스는 다윗이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신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추천했습니다.

그렇지만 블레셋의 나머지 방백들은 다윗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는 그대를 믿지만, 다른 방백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망명한 것 아닙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 이렇게 결정을 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전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결정의 결과가 예측하는 것과 빗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하는 문제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수들 중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서 나의 결정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결정을 해도 결과는 딴판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길이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의 문제는 그 결과가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를 때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홍해바다입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애굽의 군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사자성어로는 진퇴양란이라고 부릅니다.

누가 이런 상황을 좋아합니까.

피할 길이 없습니다.

도망할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자, 이들이 잘못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우리는 별 수 있습니까?

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첫번째 반응은 원망입니다.

두번째 반응은 불신입니다.

별 수가 없더라구요.

이런 상황은 내가 바라고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나는 나의 삶이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왔는데 상황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 보이는 반응이 바로 원망과 불신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언사는 불평과 불만입니다.

모세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것을 알았을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모세는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는 해답이 없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왔을 뿐입니다.

모세 자신은 무능한 존재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무능한 사람이란 것을 광야 40년의 경험에서 뼈쩌리게 느꼈습니다.

그가 40년 동안 처가살이를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게 모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된 것입니다.


시편 123편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우리는 모세를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종 모세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들으면 깜짝 놀랄 수식어입니다.

모세는 그런 평가에 대해 손사레를 칠 것입니다.

모세는 결코 위대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늘바라기입니다.

시편 123편의 기자의 말처럼 하늘바라기입니다.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감나무를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3,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에게는 선택이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하늘바라기입니다.

위만 바라보고 가는 것입니다.

위만 바라보는 것 쉬운가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위대한 것입니다.


하늘바라기는 사람의 본성과 어긋납니다.

우리의 본성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보니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도망다녀야 하고 죽을 맛입니다.

거기다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고생을 합니다.

그래서 편하게 살아보겠다고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입니다.

블레셋으로 망명한 후에는 그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잘 풀려갔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내버려두면 다윗은 사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개입하십니다.

쓴 맛을 보게 하십니다.

쓴 맛을 보아야 돌이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대 일이 잘 풀려가면, 인생 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모든 상황을 아는 것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대로 우리 인생이 꼭 풀려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세는 갇힌 상황 다음의 일을 몰랐습니다.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은 갇힌 상황속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하늘바라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갇힌 상황을 만나면 하늘바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매일의 삶에서 하늘바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을 올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 게 아닙니다.

그러니 블레셋에 있는 동안 하늘바라기가 빠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다윗의 삶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다윗이 하늘바라기를 하도록 개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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