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사무엘상

15장 32,33절

기독항해자 2017. 7. 29. 08:56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아각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무슨 뜻이죠.

네! 그렇습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남정네들이 전쟁터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면 과부들만 남게 됩니다.

결혼할 처자들은 결혼할 대상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남자들이 없으니까 당연히 여자들은 자식을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호전적인 민족으로 주로 약탈을 하여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농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가 적기 때문에 주로 목축을 하였습니다.

목축은 당연히 농업보다 생산력이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가난할 뿐만 아니라 식량은 부족했습니다.

부족한 식량과 물자를 이웃으로부터 빼앗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식량과 물건을 쉽게 나누어 줍니까?

쉽게 안 주죠. 그러니까 전쟁을 해서 빼앗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땅을 뺐으러오나요?

아니죠. 주로 식량 때문에 쳐들어와서 약탈해갔습니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그것이 자연법칙입니다.

자연법칙을 신학적으로는 일반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자연법칙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것을 돌려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게 되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게 됩니다.

돌고 도는 게 인생입니다.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돌아옵니다.

나의 행동, 나의 말이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옵니다.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이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심은 선이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뜻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을 심어야 사랑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심으면 미움 밖에 거둘게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가 선업을 권장하고 덕업을 쌓으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자연법칙, 곧 일반은총입니다.

특별은총은 뭐냐?

행한대로 받는데 아닙니다.

행하지 않았는데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은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받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해도 대가를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주시는 분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질 뿐입니다.


아말렉의 이야기를 좀더 하고 가겠습니다.

지난 번에 아말렉을 말하면서 에돔의 후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사이가 좋은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형제가 사이좋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던 고향에는 의좋은 형제의 동네가 있기도 합니다.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는 책에도 나오죠.

왜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또 권장합니까?

형제간에 의가 좋으려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절로는 안 됩니다.

그냥은 안 되고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질 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온통 부모의 마음이 첫째에게 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납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이 더 어린 둘째에게로 갑니다.

그 동안 부모의 보호와 돌봄을 100%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동생이 그것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100%로 돌려놓으려면 동생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없는 틈을 타 형이 동생을 괴롭힙니다.

죽일 힘은 없지만 괴롭힐 힘은 있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는 먼저 태어난 형이 나중에 태어난 동생을 둥지에서 밀어냅니다.

힘센 새끼가 힘이 약한 새끼에게 어미의 젖꼭지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약한 새끼는 비실비실거리다가 잡아 먹히게 됩니다.


에돔의 후손은 그들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전설로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에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팔레스타인에 가면 이스라엘과 아랍 사람들 사이에 적개심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은 적개심을 갖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끊임없이 적개심을 갖도록 교육을 받으니까 적개심을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울왕은 충분히 아말렉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을 완전히 없애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없애라고 했는데, 완전히 없애지 않았습니다.

남겨 놓으면 그것이 자라서 그 사람을 잡아 삼키는 것입니다.

죄는 뿌리채 뽑아야 합니다.

죄의 근원을 남겨 놓으면, 겉에 보기에는 선한 것 같지만 그 죄가 자라서 그 사람을 다시 삼켜 버립니다.

회개는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습니다.

습관이 모이면 그 사람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려면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묵상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게 회개입니다.

죄의 뿌리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이냐면,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입니다.

선한 생각으로 가득채우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아말렉 족속을 남겨 놓은 결과, 다윗은 아말렉으로부터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이전에 사울왕에게 쫓겨서 도망다니다가 시글락이라고 하는 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의 탄압을 피해 블레셋의 왕에게로 잠시 망명을 하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격에 자신의 부대를 제외시키고 배척당하자 6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자신의 근거지이자 블레셋의 한 성읍 시글락으로 갔습니다.

시글락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은 아말렉의 침입으로 강끄리 비어 있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쳐들어와 시글락과 네겝을 약탁하고 불을 지른 뒤 다윗의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잡아간 뒤였습니다.

돌아온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을 돌려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다윗이 크게 다급했다고 말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했느냐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다윗이 어떻게 부하들을 설득했는지 잘 모릅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 다음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에게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가져오게 합니다.

다윗이 에봇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브솔에 이르자 600명 중에 200명이 지치고 힘들게 되자 낙오를 하게 됩니다.

400명 만이 아말렉을 다시 추격하였습니다.

도중에 아말렉 족이 버리고 간 이집트 아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소년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다시 아말렉 족을 다시 추격하였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승리에 도취하여 축제를 버렸습니다.

축제하면 술입니다.

술취하면 사람은 사리분간을 못하게 됩니다.

술취하면 사람은 개차반이 됩니다.

신사도 군자도 술취하면 개차반이 됩니다.

다윗은 아말렉을 쳤습니다.

이 전투에서 다윗은 대승을 거두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도로 뒤찼게 됩니다.

시글락의 전투는 다윗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다윗은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주위에 있는 도시들에 나누어 줍니다.

두 개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민족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게 됩니다.

요나단은 왕위 계승 1순위입니다.

요나단이 살아 있으면 요나단은 다윗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원치 않게도 왕위 계승 싸움에 나서야 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전쟁은 다윗과 아말렉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통해 그의 지도력을 확고히 하게 되고 왕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다윗의 군대가 600명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다윗이 아말렉을 쳤지만 아말렉을 완전히 도말한 것은 아닙니다.

아말렉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겼습니다.


아말렉은 다시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에스더서에서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하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의 조상이 누구냐면 아각입니다.

하만을 소개할 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각은 사무엘 선지자가 죽인 아말렉의 왕의 이름입니다.

아각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서 하만이 제국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하만이 이스라엘 민족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진행할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로 인해 그의 계획은 무위로 돌아가고, 하만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나쁜 습관은 단호하게 짤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라고 자라나서 그 사람을 집어 삼킬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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