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4, 25절을 보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울왕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왕권의 유지에 있습니다.
사울왕의 관심은 하나님 말씀에 있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왕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사울왕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울왕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척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국가의 원로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을 비토하면 사울왕의 왕위는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베냐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의 출신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사울왕은 하나님보다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대상에 매이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대상을 높이게 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에게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살면서 우리가 두려워야 할 대상은 별로 없습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뿐이죠.
사울왕은 자신의 왕위가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사울왕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을 결심하셨습니다.
이때도 사울왕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사울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울왕은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왕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의 겉옷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겉옷이 찢어졌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겉옷은 강력한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위를 옮기시겠다는 표시입니다.
여기서 겉옷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은 채 상하 구별 없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곧 옷을 입는 법을 배워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시원하게 하여 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의복은 때로는 어떤 이의 종교와 직업, 그리고 민족적 특성까지도 표현해 줍니다.
겉옷이란 말은 속옷이 있음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의복에 관한 많은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어떤 형태의 의복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조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겨울에 오는 비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섬유가 보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속의 의복의 명칭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실제 의복의 형태가 없어 이 의복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는 난감하다고 합니다.
의복을 지칭하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베게드(beged)로 성별과 지위에 구별없이 모두가 입고 있는 의복을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울과 아마 섬유(혹은 린넨-한국어 성경은 베옷으로 번역했다), 면 등으로 몸에 붙지 않는 원피스처럼 조금 느슨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었습니다.
유목민족인 가나안과 이스라엘에서 울은 가장 흔한 생산품이었습니다.
베옷은 훨씬 고가였으며 주로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것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처럼 자주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류층의 사람들만이 이런 고가의 옷을 입었고 사치품의 하나로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모습이 남겨져 있는 가장 대표적인 주변 문화의 흔적은 앗수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특별히 열왕기하 18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산헤립의 이스라엘 침략의 기록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남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헤립이 니느웨의 자신의 궁전 벽에 남긴 이 부조에는 그가 남왕국 유다의 라기스를 정복했을 때 라기스의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장면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 부조를 통해 우리는 성경 속의 의복에 관한 묘사와 비교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의복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경우 몸 위에 바로 걸쳐 입은 옷을 에조르라 불렀는데 스코틀랜드의 남자들이 입던 킬트처럼 허리에 간단히 옷감을 두르는 형태입니다.
여기에 허리띠를 매어 고정시켰습니다.
이러한 옷들은 활동이 많은 군인들이나 노동자들이 주로 입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조르 위에는 쿠토넷이라 불리는 여자들이 주로 입는 원피스 형태의 옷을 걸쳤습니다.
쿠토넷은 남자와 여자 모두가 입었는데 일반 남성의 경우는 길이가 짧았지만 지위가 높은 남성이나 여인들의 것은 마치 드레스처럼 길이가 길어 발목까지 닿았습니다.
쿠토넷의 소매 길이는 짧은 것과 긴 것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인들의 경우 쿠토넷 위에 하고라라 불리는 띠 같은 것을 둘러 무기나 다른 용품들을 찰 수가 있었습니다(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활동성을 위해 쿠토넷의 끝자락을 올려 하고라로 여며서 입었습니다.
쿠토넷 위에는 겉옷을 걸쳤는데 이것은 심라/삼라라 불렸습니다.
심라/삼라는 로마의 토가처럼 몸 위에 걸쳐 자연스럽게 끝자락이 흘러내리도록 하고 끈으로 묶기도 했으며 몸을 휘감아 둘렀습니다.
이 옷은 사각형의 옷감의 형태였으며 고위층의 옷에는 장식이 달려있기도 했습니다.
심라/삼라는 일반인들에게는 장식의 기능보다는 추위와 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겉옷의 기능이 컸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이스라엘에서는 낮에 일을 할 때는 심라/삼라를 벗었지만 밤에는 이 옷을 담요처럼 몸을 덮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6-27절은 이웃의 옷 즉 심라/삼라를 전당 잡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이 의복만이 그의 알몸을 가려 밤의 추위에서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옷이기 때문입니다.
왕실과 제사장들의 겉옷은 지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메일 혹은 아데렛이라 불렸습니다.
고급스러운 겉옷으로 느슨하게 밑으로 드리워 입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겉옷이 바로 메일입니다.
사울이 왕으로서 그 지위를 빼앗겼을 때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붙잡아 찢었습니다.
사무엘은 옷이 찢어진 것을 사울의 왕국이 찢어졌다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에게서 떼어 사울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실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이 구절의 답을 보여주듯 다윗은 그가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동굴 안으로 들어온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습니다.
결국 그의 왕권은 다윗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사건이 있기 전 이미 사울의 후계자였던 요나단 역시 다윗에게 왕권을 양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요나단은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까지도 그에게 주었습니다.
옷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요나단에서 다윗에게로 왕위의 계승이 이동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사한 모양의 겉옷이었던 아데렛의 경우에도 엘리야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 즉 아데렛를 엘리사에게 주어 그의 능력을 전수했다.
사무엘 선지자는 끝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왕의 관심은 자신의 왕권에 유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회개는 마음에 우러나온 회개가 아닙니다.
마지 못해 하는 회개입니다.
그러니까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버리는 것입니다.
입으로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는 회개를 입으로 하는 회개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는 없습니다.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입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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