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6절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뜻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 우리 인생은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길과 내 마음대로 사는 길,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살 수도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두 길의 시금석입니다.
일종의 바로미터입니다.
여전히 우리 앞에는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내 마음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 시편 기자는 이 인생의 두 길에 대해서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는 복이 있는 사람의 길이고 하나는 악인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길이란 내 마음대로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선택하며 삽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선택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동물들에게는 이 선택의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본능대로 삽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아닙니다.
자, 선택하는 문제가 쉬운가요.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데, 남이 나를 대신해서 선택해주지 않습니다.
어쨌든 내 인생의 주인은 나입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 선택을 내 마음대로 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마음대로 살도록 유혹하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떠나서 내 마음대로 살도록 유혹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묻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 길을 말씀해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야고보서 4장 7-8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길을 보여주십쇼.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인도해주십쇼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뭡니까?
우리가 구하는 길은 항상 평안한 길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길은 어려움이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한 길, 어려움이 없는 길은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우리의 길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갈 때 만나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시편 23편은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시편 23편은 인생을 다 살아본 사람의 결론입니다.
우리 앞에는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만 있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갔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갑니다.
왜요, 사람들은 대부분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돌아갑니다.
우리 앞에 쭉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앞에 쭉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만 있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 쭉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만 있으면 더 이상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쭉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만 있으면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어려운 길입니다.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이게 사울이 생각해낸 게 아닙니다.
사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사울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방법을 알려준 것입니다.
사울은 집행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사울은 하나님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게 바로 성령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순종하자,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했습니다.
백성들이 한 사람 같이 전쟁을 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이게 사울왕이 만들어 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여기가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우리가 어떤 업적을 만들어낼 때, 그것을 누구의 공적으로 돌리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어떤 업적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그 때 그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업적의 공적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내가"라고 말을 합니다.
다니엘서에서 느부갓네살이라고 하는 왕이 나옵니다.
남쪽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왕입니다.
이 왕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다니엘서 4장 30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성경은 이런 사람을 교만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이렇게 대하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
100년도 다 살다가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사람이 잘나 보았자, 거기서 거기일 뿐입니다.
특별한 인생이 있습니까?
사울이 백성을 모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여서 백성들을 모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 승리하였습니다.
그의 능력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암몬과의 전쟁에 승리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 승리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한 것이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 이 문제로 넘어지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한국교회에 내노라하는 교회들은 부자가 교회를 세습하고 있습니다.
왜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줍니까?
남 주기 아까운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인데 남에게 주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를 뭐라고 부릅니까?
이가봇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는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가 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출석하면 무엇합니까?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내가 주인이 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업적을 이루는데 기여했다면, 그 때가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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