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당나귀 한 마리가 사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당나귀 한 마리를 찾아 집을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는 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꿈꾸었던 미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왕을 꿈꾸었다면 세력을 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을 신정국가 체제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왕은 선지자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대리왕입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대리 통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백성에 있는 정치제도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준 세 가지 증거 중에 첫번째로 이루어진 증거입니다.
가장 나중에 말한 증거입니다.
9절에 보면 사울에 언제 하나님의 영이 임하냐면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입니다.
사울이 산당으로 올라갈 때 아마도 두 번째 증거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란 말씀을 보면 두 번째 증거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사울 일행은 떡 두덩이를 받아서 산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산당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 일단의 선지자 무리를 만납니다.
사울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기가 기브아입니다.
사울의 고향입니다.
기브아는 예전만큼 큰 도시가 아닙니다.
기브아 사건으로 인해 도시가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그 동네 사람들의 서로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습니다.
사울의 삶은 신앙과는 멀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적인 일에는 무외한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의 부모도 역시 신앙과는 멀었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기브아 사람들은 사울의 됨됨이와 그의 부모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울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사울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인정을 받으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변화된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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