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길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그리스천이라면 알려는 게 당연지사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렇게 대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기름을 붓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을 붓는 광경을 아무도 목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울은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주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의문을 표시할 거고, 사울은 그것에 대해 답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은 어떤 사람이 되게 됩니까?
실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에게 객관적인 증거들을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그 증거들을 수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성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알게 됩니다.
첫번째 증거입니다.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이 구절의 말씀은 사울이 알고 싶어하던 내용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미 사울에게 암나귀를 찾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아마도 반신반의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사무엘 선지자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사무엘 선지자라고 하니까 사무엘 선지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신뢰라는 것은 오랫 동안의 관계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처음 만나자 마자 생기는 게 아닙니다.
사울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일입니다.
이럴 경우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것입니다.
두 사람의 증인을 통해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왜 두 사람입니까?
증거의 효력이 있으려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두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의 증거 능력이 인정됩니다.
두 번째 증거입니다.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