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사무엘상

9장 1-4절

기독항해자 2017. 5. 26. 19:3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이스라엘이 왕정 시대로 나아가는 길에 첫번째 왕이 등장합니다.

사울은 사실 다윗왕과 비교하여 거의 불명예스러운 사람으로 취급되기가 십상입니다.

사실 다윗왕도 인간적으로 오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울왕보다 더 많은 오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왕은 항상 사울왕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왕이 다윗 언약의 당사자이고 메시야의 모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점들은 다 다윗이 사울왕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윗 언약도, 메시야의 모델도 다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사울왕은 베냐민 지파의 후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름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왕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입니다.

사울이란 이름이 불명예스런 이름이었다고 한다면, 사울이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울왕은 불명예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왕은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안다고 한다면, 베냐민 지파가 갖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왕이 태어났을 때는 사사시대 말이었습니다.

사사시대는 약 400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사사시대에 베냐민 지파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두 개의 삽화가 등장하는데 그 중에 하나입니다.

사사기 19, 20, 21장에 걸쳐서 이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이 같는 역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레위인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첩이 행음을 하고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공개재판을 하고 돌로 쳐서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이 첩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 하인을 대동하고 처가로 갔습니다.

장인이 이 레위인의 마음이 알아보기 위해서 3일 동안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장인도 율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사위의 마음을 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지

4일째 되는 날, 이 레위인이 떠나려고 하자, 아직 사위의 마음을 알 수가 없던 장인이 붙잡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를 묵게 됩니다.

5일째 되는 날, 레위인은 길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도 장인이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늦은 오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 레위인은 부득불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떠날 때 이미 어두워 오기 시작한 때라 곧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할 때쯤 이들은 예루살렘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아직도 이스라엘이 점령하지 못한 성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것에는 여부스 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레위인은 여부스 족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레위인입니다.

그는 안식일이 지나서 출타를 했을 것입니다.

이제 5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 예배에 참여하려면 어떤 부정에 접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방인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가기를 저어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에 포함된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지금 레위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는 기브아를 목적으로 해서 올라갔습니다.

기브아에 도착하여 유숙할 집을 찾기 위해서 성읍 넓은 거리로 갔습니다.

자, 이 시대에는 숙박시설이 발달한 시대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처럼 숙박을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면 누군가 나와서 영접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레위인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자, 이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그네를 접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이들이 믿음을 상실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을 영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베냐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흘러서 이 도시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도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이 있었을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기업이 회복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했다는 말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도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사람이 레위인을 영접하였습니다.

이들이 이 노인의 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고 저녁 시간을 보낼 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이 노인의 집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인을 내어 놓으라고 살기 등등했습니다.

이 노인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입니다.

이 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은 그것을 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외지인이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쫓겨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은 안 물러갈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불량배들은 레위인을 내어놓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결국에는 레위인의 첩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밤새도록 불량배들이 레위인의 첩을 능욕(윤간)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레위인 첩은 이 노인의 집 문까지 왔습니다.

결국 문도 두드리지 않고 있다고 죽었습니다.

그것을 아침에 레위인이 보았습니다.

레위인이 첩의 시체를 당나귀 등에 싣고 집으로 돌았습니다.

돌아와서는 시체를 열 두덩이로 나누고 사연을 적어서 12지파에 알렸습니다.

이것을 기브아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기브아 사건은 창세기의 소돔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의 미스바로 모여들었습니다.

사건의 내막을 들은 사람들은 기브아 사람들을 징벌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백성의 총회는 베냐민 지파에게 이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을 내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으면 사건은 더 확대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이들을 보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에는 베냐민 지파 장정 600명만 남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사울왕은 이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베냐민 지파 출신이 어떻게 왕이 되겠다고 나설 수 있습니까?

말도 되지 않습니다.

백성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면적이 있었던 것이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는 세력이 쪼그라 들고 들어서 민족을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권위 있게 왕으로서 행세할 수 있었겠습니까?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의 정통성이 비토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기자는 이 사울이 왕으로 충분히 자질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은 책임감이 있던 사람입니다.

암나귀가 집을 나갔습니다.

도둑을 맞았는지 어떤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울은 이 나귀를 찾아서 구석구석 훑어보았습니다.

왜 이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까?

사울은 책임감이 있고 왕으로서의 자질도 충분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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