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이 늙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습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사무엘이 한 일은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은 것입니다.
사사는 임명직이 아닙니다.
사사는 세습직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은 것입니다.
여기서 사사에 대해서 정리하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사는 히브리어로 솨파트 혹은 쇼페트라고 하며 원뜻은 '판결을 선고하다, 다스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의 법은 토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스라엘의 법이었습니다.
재판은 누가 하였을까요?
출애굽기 18장에 모세가 재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는 혼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법률적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만이 율법에 정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모세의 장인이 보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재판하는 일을 나누어 가질 사람을 선발하고 그들을 모세가 훈련하여 재판할 일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들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장로들이 담당하였습니다.
사사는 넓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좁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는 사사 시대의 사사들만을 국한하여 사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재판하는 일을 하던 사람들을 다 일컫는 말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재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재판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적인 재판관은 아닙니다.
족장 시대의 족장들, 모세에 의해 세움을 받은 유사들, 앞에서 말한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들이 유사들입니다.
이들이 다 사사로 부를 수가 있습니다.
왕정 시대의 재판관들, 또 왕들도 사사로 부를 수가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 사사라고 할 때는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왕정체제가 갖추어지기 전까지 비공식적인 지도자들을 사사라고 부릅니다.
사사 시대의 사사들은 불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들에게 율법을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온전한 보호 아래 있게 됩니다.
사사 시대는 진정한 이상적인 시대입니다.
아나키스트들이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자율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보호 아래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사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결과로 존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사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만 있다면, 재판제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재판장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민족의 손 아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이민족을 섬기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다른 민족의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고달프게 되면 햐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사사는 이렇게 해서 군사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사들은 평화시대가 도래하면 더 이상 군사적인 지도자 역할을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원래 직무로 돌아갑니다.
게 중에는 재판관이 되어 재판하는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재판하는 일은 장로들과 제사장이 담당을 하였습니다.
사실 사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법에 능통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사들이 재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사들은 판관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사사들의 특징을 보면
첫번째로 백성들의 선출이나 세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소명에 의해 세움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사사들은 대개 인간적인 약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간적으로는 존경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사사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실 이들은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따를 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도자 타입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운 것은 좁은 의미의 사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사는 재판하는 일을 넓은 의미의 사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이 아버지 사무엘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나는 열왕기서를 읽어갈 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심히 봅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를 주목하여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앙이 좋다고 해서 아들이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 좋은 아버지 밑에서 신앙이 좋지 않은 아들이 나오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본받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은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자녀들의 인생이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자녀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훌륭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삶에 별로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녀들과 평생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삽니다.
왕정시대에 왕들은 이민족과 결혼동맹을 맺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 시집을 오게 됩니다.
여호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여호와의 신앙에 벗어나게 됩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 사무엘은 자녀들을 교육하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자녀들과 친밀한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들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바쁜 아버지들은 아들들은 친밀한 시간을 갖기 보다는 다른 것들을 줌으로써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바쁜 아버지와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한 아들들은 아버지를 닮아가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와 반대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친밀한 시간을 갖지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쁘고 훌륭한 아버지 사무엘에게서 자녀들을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버지을 보게 됩니다.
바쁘고 훌륭한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다른 것을 주려합니다.
사무엘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무엘은 자녀들에게 미안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미안함이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자녀들을 사사로 세운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