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누가복음묵상

누가복음 4장 22-30절

기독항해자 2016. 3. 1. 21:39

본문: 누가복음 4장 22-30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제목: 나사렛에 있었던 에피소드2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을 다 그를 증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증언했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영역본 성경을 보았습니다.

All spoke well of him and were amazed at the gracious words that came from his lips. "Isn't this Joseph's son?" they asked.(NIV)

And all bare him witness, and wondered at the gracious words which proceeded out of his mouth. And they said, Is not this Joseph's son?(KJV)

And all were speaking well of Him, and wondering at the gracious words which were falling from His lips; and they were saying, "Is this not Joseph's son?(NASB)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호의적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좋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이 은혜로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만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을 충분히 설명한 후에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이었다고 하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이 돌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들의 예고편입니다.

처음에 나사렛 사람들은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 그 동네를 빛내주는 사람이라고 예상해서 이런 호의를 보였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나다나엘이 친구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은 당시에 별 볼일 없는 동네였습니다.

그런 동네에서 인물이 난 것입니다.

동네를 빛낼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크게 예수님을 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을 빛낼 줄 분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반응은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 실망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뒤집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에게서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예수님의 수난 주간의 일주일을 연상시켜 줍니다.

수난주간을 앞둔 종려주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에게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21장 7-10절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이렇게 예수님을 뜨겁게 환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도 안 되어 돌변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0-23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렇게 군중의 여론은 조변석개처럼 변화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리 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들의 견해를 바꾸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쉽게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군중의 인기라는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 뜨겁게 찬사를 늘어 놓던 사람들이 그들의 기대가 어긋나게 될 때, 돌변하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군중의 견해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군중 속에 있을 때에는 다수를 따라가게 됩니다.

만약 다수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게 될 때는 군중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장 23,24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예수님은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돌변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관계를 따져보고 이가 되면 따르고 해가 되면 거부합니다.

공자는 이렇게 이를 따라 사는 사람을 소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에 군자는 의를 따라 산다고 말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윤봉길 의사는 의를 따라 살았기 때문에 군자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다 소인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을 추종했던 사람들은 떠나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너무 어렵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59-66절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는 이유도 대부분 자기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해가 되면 당연히 교회를 떠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도 그들에게 이득이 돌아오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마음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나사렛으로 오시기 전에 가버나움에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구절들이 예수님의 그 사역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가버나움의 사역을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을 읽은 독자들은 가버나움의 사역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4장 14,15절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누가는 가버나움의 사역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마태사도는 보다 상세하게 가버나움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2-25절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나사렛으로 가시기 전에 상당히 오랫동안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는 예수님의 소문이 멀리까지 퍼져갔습니다.

당연히 나사렛 사람들도 그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예수님께 나오는 병자들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면 그들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치유가 일어난다면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들 것입니다.

이렇게 고침을 받았다고 해서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추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기 때문에, 나사렛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시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야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나사렛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는 것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철부지 시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6장 1-6절의 말씀을 보면, 고향의 사람들의 믿지 않음을 예수님께서 이상히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61-6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란 말을 나사렛 사람들은 살짝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를 들고 있는 말씀은 분명히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불편하게 했을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치 이방인을 높이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개처럼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의 반열에 놓고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무슨 선지자라고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영을 받지 못한 선지자의 예로 엘리야와 엘리사를 들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선지자로 대접했다면, 당연히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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