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누가복음묵상

누가복음 3장 21, 22절

기독항해자 2015. 4. 25. 12:30

본문: 누가복음 3장 21, 22절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제목: 세례을 받으시다


①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왜 백성들이 다 세례를 받았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그리고 세례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세례란 말은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례와 관련된 의식이 성경에 나옵니다.

율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결의식인 미크바(Mikvah)에서 세례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이 정결 규례가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부정한 사람이 정결한 사람이 되었을 때는, 정결의식을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정결 예식에 보면 몸을 물로 씻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병환자의 정결예식입니다.

 

레위기 14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나병환자는 구약시대에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전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이들이 고침을 받게 되면, 제사장이 진찰을 하고 정결예식을 하여 정한 사람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이 정결예식의 내용 중에 몸을 물로 씻도록 하였습니다.

나병환자만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된 것이 아닙니다.

각종 유출병이 있는 사람들도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유출병이란 몸에서 피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레위기 151-15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

그의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이 이러하니 곧 그의 몸에서 흘러 나오든지 그의 몸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막혔든지 부정한즉

유출병 있는 자가 눕는 침상은 다 부정하고 그가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그의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씻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가 정한 자에게 침을 뱉으면 정한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가 탔던 안장은 다 부정하며

그의 몸 아래에 닿았던 것에 접촉한 자는 다 저녁까지 부정하며 그런 것을 옮기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가 물로 그의 손을 씻지 아니하고 아무든지 만지면 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이 있는 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리고 나무 그릇은 다 물로 씻을지니라

유출병이 있는 자는 그의 유출이 깨끗해지거든 그가 정결하게 되기 위하여 이레를 센 후에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그의 몸을 씻을 것이라 그러면 그가 정하리니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자기를 위하여 가져다가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려 그의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서 속죄할지니라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지성소로 나아가는 대제사장은 반드시 물로 몸을 씻도록 하였습니다.

 

레위기 16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갈 때만 물로 몸을 씻은 것이 아닙니다.

지성소에 나와서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물로 몸을 씻도록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갈 때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은 부정하게 됩니다.

대제사장은 정결의식을 다시 행해야만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갈 수 있는 날을 대속죄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날 두 마리의 숫염소가 번제물로 준비됩니다.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게 됩니다.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사람들도 물로 몸을 씻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일 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지고 광야로 나아가기 때문에,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부정하게 된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를 마진 사람들도 역시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이들도 물로 몸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1623-28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속죄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를 것이요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며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

불사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지니라

 

이렇게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크바를 행하여 정결한 상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미크바는 이렇게 정결예식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미크바는 정결 예식을 위해 마련된 목욕탕을 일컫기도 합니다.유대인의 법전인 미슈나에 보면 미크바 의식에 쓰기에 합당한 물의 조건들과 정결의식에 필요한 물의 양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미크바는 각 유대인 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이어서 그 건설을 위해 필요하다면 회당을 매각해 재정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미크바와 관련된 한 사건을 보고 가겠습니다.

최근 미국의 정통 유대교 사회가 미크바 몰카사건으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분노감과 수치심의 중앙에는 랍비 배리 프러운델(63)이 있었습니다.

그는 워싱턴DC 조지타운 N스트리트에 위치한 미국 최대 회당인 캐셔 이스라엘의 최고위급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타우슨대 교수이기도 했습니다.

저서 현대 정통 유대교의 응답(2007)’을 통해 미국 정통 유대교인들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25일 미국 워싱턴DC 고등법원에 따르면 그는 도촬 혐의로 미국 검찰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러운델은 캐셔 이스라엘 회당 미크바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여성들의 몸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기 위해 탈의실과 목욕장 곳곳에 카메라를 숨겼습니다.

디지털 벽시계, 화장지 박스, 환풍기 등 카메라를 감출 수 있을 만한 장소와 공간을 모두 이용했습니다.

여성들의 신체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됐습니다.

프러운델의 행각은 회당 직원의 신고로 지난 201410월 꼬리가 밟혔습니다.

경찰은 카메라에서 여성 6명의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타우슨대 연구실에서도 동영상을 찾아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만 150여 명에 달했습니다.

6년 동안의 기간을 감안하면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처벌을 원하는 52명의 피해자를 토대로 기소를 했습니다.

이 일로 미국 정통 유대교 사회의 충격이 컸습니다.

 

미크바는 정결예식을 위해 준비된 목욕탕과 그리고 몸을 씻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정을 씻고 정결한 몸으로 성전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미크바가 세례요한의 세례의 기원이 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어떻게 세례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세례요한의 세례가 상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세례요한이 어떻게 세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34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세례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미크바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미크바는 부정하게 된 사람이 성전에 나아가기 위해 하던 의식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세례요한의 세례를 보통 회개의 세례라고 부릅니다.

회개란 방향전환을 말합니다.

과거의 부정한 삶과 결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죄 된 삶과의 결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요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 갔을 때 요한은 주저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다시 한 번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9-34

 

세례요한의 세례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반백성에게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신 예수님에게는 세례요한의 세례는 대관식의 일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에서 나오자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그에게 내려왔고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13~17).

이렇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은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처형되었다가 부활한 뒤 그는 제자들에게 신앙을 널리 퍼뜨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8:19).

이 말은 지금도 기독교 세례에서 늘 되풀이되는 관용 표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하기 때문에 세례의식을 흔히 삼중세례(threefold baptism)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을 침례라고 부릅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하던 대로 강이나 호수의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교파(침례교)는 물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세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중에는 연중 어느 때든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미크바와 같은 설교단 뒤에 세례실을 갖춘 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순결한 새 삶의 시작을 상징하는 의미로 흰 옷을 입는 게 전통이었습니다.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물을 뿌리는 교파도 있습니다.

성직자가 손을 물그릇에 담갔다가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뿌려주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파는 약간의 물을 부어주기도 합니다.

형식과 무관하게 세례는 몇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 자신이 겪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로마서 6:4).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상징이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새 삶(부활)의 상징이었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로마서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죽음과 부활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의식은 침례방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교회가 침례방식을 따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례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성은 삼중세례에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 의미를 좀 더 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주는 이유와 목적을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 요한은 '회개''천국'을 연결시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지 않는 자는 진노의 대상이 되어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오시는 능력 많으신 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을 소개하는 것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구원)이실 뿐 아니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심판)이시기도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례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백성의 표시인 것처럼 세례는 크리스천 공동체에게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세례가 중요하지만 세례 받은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누가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 일어난 일들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누가만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구절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립니다.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 사도입니다.

 

사도행전 10장 9-11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공중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영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만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도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9-16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사도 베드로와 요한 만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4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두 번째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8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기도한 제자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세 번째로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양자의 영은 성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가 아닌데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14-16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임을 증언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심을 알려줍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크리스천이 된 이후에 있게 되는 세 가지 놀라운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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