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누가복음묵상

누가복음 4장 16-21절

기독항해자 2015. 5. 20. 21:23

본문: 누가복음 4장 16-21절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제목: 나사렛에 있었던 에피소드1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주로 가버나움에서 있었습니다.

나사렛은 지금은 큰 도시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웃의 사정을 다 잘 알고 지냈습니다.

도시는 익명화된 사회이지만 시골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사렛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흘리게 시절을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입니다.

안식일에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성전 중심의 예배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민수기 28장 9,10절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마리로 번제를 드리고 소제와 전제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립니다.

상번제는 매일 드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빠짐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는 더 드리는 것입니다.


민수기 28장 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


7절에 보면 전제가 나옵니다.

전제는 독주를 부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전 예배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예배에 참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주 안식일마다 성전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전에 와도 예배를 드리는 공간인 성소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 드려지는 예배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대신에 안식일을 엄숙하게 지켜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이 금지되었습니다.

노동을 통해서 우리는 생존할 수가 있습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있게 하는 먹거리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두려워하게 됩니다.

먹거리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안식일에 안식함으로 생활의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우리가 노동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지만, 노동 자체가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농부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지만 식물을 자라나게 하는 빛과 물과 공기와 토양은 사람이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안식일의 안식은 생활의 염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마태복음 6장 25-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안식일에 안식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안식일에 안식하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입니다.

이들은 성전 예배를 위해서 짐승을 잡고 불을 피우고 각종 일을 합니다.

이렇게 일반 백성들은 집에서 안식을 하면 됩니다.

그게 바로 성전 예배에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됩니다.

성전이 파괴되자 더 이상 성전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회당 중심의 예배입니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에 등장한 것으로 봅니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모였던 것으로 봅니다.

에스겔서에 그 원형을 찾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모였던 초대 교회와 같이 이 '가정 회당'은 포로시대 이후 점차로 발전되어 교육과 공중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공식 회합 장소로 바뀌게 됩니다

이 모임이 성전 예배를 대신하게 되는데, 팔레스타인 밖에 멀리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게 성전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당수의 유대인들이 정착된 도시마다 율법과 예언서를 가르치며 예배를 드리는 회당(4:16-30)을 세웠습니다

이 회당에는 히브리 성경이 안치 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에서는 회당장(8:41;18:8,17)과 부회당장격인 핫잔(Hazzan)이 행정과 집회 인도를 했고, 랍비(Rabbi)가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회당 예배는 매 안식일마다 쉐마(Shema)의 암송/기도/율법과 선지서의 낭독/설교/축도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회당이 없는 곳에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거주자가 많지 않는 곳에는 회당이 없는 곳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걷도록 허용한 거리는 약 1km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이 거리 이상 걷는 일을 금하고 있습니다

1k 이상을 걸으면 일로 본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이나 회당이 그 이상의 거리에 있는 유대인은 가정에서 예배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전이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려면 안식일 전에 그곳에 도착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습관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행동을 보면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매사가 부정적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매사가 긍정적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매사가 불평 투성입니다.

그게 몸에 밴 것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안식일에 회당에 가신 것입니다.


회당(synagogue)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시나고그입니다.

시나고그는 신syn이란 말과 (그 뜻은 함께입니다)과 아고ago란 말의 합성어입니다

회당은 가장(家長) 10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회당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한 방은 기도, 설교, 공중예배의 사무실, 그리고 다른 방은 배운 사람들의 모임, 종교와 훈련에 관한 질의응답, 교육의 목적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회당에는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방공회원들이었습니다

회당업무를 관리하는 위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파문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개가 바리새파에 속하였습니다.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장로 가운데 선출되었습니다

예배의식이나 설교, 성경봉독 등을 책임지고 배정하며, 회당의 질서와 토의를 주재하였습니다(5:22; 13:15).

회당에는 회당시중이라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회당시중은 회당의 조명이나 청결을 책임졌고, 회당에서 정한 처벌을 집행하기도 하였습니다(10:17; 23:34; 13:9; 22:19). 

회당시중은 임금을 받았습니다(4:20).

예배 중에는 성경을 꺼내어 봉독자에게 전달하고, 봉독이 끝나면 궤에 넣는 일도 하였습니다(4:20).

20절에 나오는 그 맡은 자가 바로 회당시중입니다.

관주에는 사환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임시직으로 회중대표가 있었습니다. 

회중대표는 회당장에 의해서 매 모임에서 선출되었습니다.

끝으로 통역관이 있었습니다.

통역관은 히브리어를 아람어로 통역하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통역관은 임시직이었습니다.

 

회당 예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쉐마를 암송합니다.

쉐마의 뜻은 들으라입니다. 

쉐마(Shema)를 암송할 때는 세 개의 성경 구절(6:4-9; 11: 13-21; 15:37-41)를 암송합니다. 

쉐마의 암송 후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도는 쉐모네 에스레(shemoneh esreh), 열 여덟 가지 찬양입니다

이를 한 주기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율법과 선지서의 낭독 순서가 있습니다.

기도 후에 그 주 안식일을 위해 율법에서 발췌한 성구를 낭독합니다

그러면 통역관이 한 절씩 한 절씩 아람어로 번역합니다.

모세오경은 154개의 발췌문으로 나누어져 있고, 3년마다 한번씩 되돌아옵니다

이것이 끝나면, 예언서에서 발췌한 성구가 낭독됩니다.

율법과 선지서의 낭독 후에는 설교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강해 또는 주석 설교였던 것이 점차 신앙중심으로 흘렀습니다

설교는 회당장이 지명을 하거나 자원자가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순서를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 후에는 축도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축도는 장로 중에 한 사람이나 회당장이 하였고,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축도는 민수기 6장 24-26절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은 이사야였습니다.

바로 이 구절의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진수입니다.

예수님의 사역하신 결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사역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누가 가난한 자들일까요?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나오는 세리가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 8-14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여기에 나오는 세리가 바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부유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은 거울을 들여다 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압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전까지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자기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이사야 6장 1-5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웃시야 왕이 죽으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영적 암흑기로 들어갑니다.

웃시야 왕은 비교적 정치를 잘 했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아하스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이스라엘 상황을 놓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때, 우리는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살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는 잘 난 사람이었습니다.

충분히 뻐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리의 반대편에 있던 전형적인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도바울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혈통적으로 우수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왕과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학부 출신이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입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사도바울은 자기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알았습니다.

전에는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문제가 있지만 나는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복음을 만날 때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복음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복음을 만나게 되면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사람들은 다 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끌고 다니는 데로 끌려 다닙니다.

그런데 복음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포로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그 포로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또한 자각하게 됩니다.

복음만이 자신을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자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요청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바로 세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간청하는 사람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해줍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신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복음서를 통해서 이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예수를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분으로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림의 예수님은 신구약 성경에 미완으로 남아 있는 종말론을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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