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보따리

뜻을 세우는 시기

기독항해자 2013. 1. 8. 18:54

스탠리 볼드윈은 57세에 영국의 수상을 세 번이나 역임한 사람이다.

정치계에 발을 디딘 것은 딴 사람보다 늦은 42세였다. 사업가로 성공한 그가 입후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은 반대를 했다.

"자네는 벌써 42세야. 새삼스럽게 정계에 입문했다 해도 뒤치다꺼리나 해야 할 테니 그만두는 게 좋아. 회사도 성공한 위치에 올라 있지 않은가?"

그는 반대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그건 그럴지 몰라. 그러나 나는 내 이해관계 때문에 의원이 되려는 것이 아닐세. 경제 위기에 빠진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서야. 시기의 늦고 빠름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일찍이 국운의 회복과 겨레의 참교육을 실천한 우리 민족 근대화의 선각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부터 건전한 인격을 갖추어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 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


뜻을 세우는 데 늦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언제나 뜻을 세울 때 다시 태어난다.

(출처: 즐거운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 전정봉, 윈앤원북스)


스탠리 볼드윈 백작(Stanley Baldwin, 1st Earl Baldwin of Bewdley, KG, 1867년 8월 3일~1947년 12월 14일)은 영국의 정치가, 기업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볼드윈 철강 회사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하여 보수당 소속으로 1908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상무상, 재무상을 거쳐 1923년에서 1937년까지의 기간 동안 3번 총리를 지냈다.

1926년 탄광 총파업에는 노동 조합법을 만들어 그 처리에 성공하고, 1928년 여자들에게도 선거권을 주어 부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새 왕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왕의 퇴임을 요구하여 왕실의 존엄성을 지키려 하였다. 산업의 진흥, 실업자 구제, 보호 무역 정책 등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1929년 총선거에서 패하여 사직하였다. 1935년 맥도널드 내각이 총사직한 뒤를 이어 다시 총리가 되었다가 1937년에 완전히 물러나 은퇴하였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