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제임스 패커, 정옥배, 두란노, 2005), 2012년 9월에 읽음
이 책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길에 대해서 균형잡힌 시작을 제시하고 있다. 제임스 패커는 대가답게 시종일관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한다. 직관과 지혜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관과 지혜를 겸한 하나님의 뜻 분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터득해야만 하는 삶의 정로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1부 기초 다지기/기본과 방향
1. 위험! 신학자는 작업중
지도만들기
그리스도인의 삶은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장애물과 웅덩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거친 곳과 평탄한 곳, 사막과 늪지를 모두 만나고, 폭풍우와 안개가 주기적으로 햇빛을 차단한다. 지도는 지형과 날씨가 어떻든 언제나 보행자가 길을 찾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좋은 지도가 있으면 주변 지형을 인식하고 관찰한 특징을 더 넓은 풍경과 연관시키며, 각 단계에서 가야 할 곳을 알 수 있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신학자는 지적 재산처럼 그저 가지고만 있는 지도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순례 여행에서 길을 찾는 데 사용하는 지도를 그리려고 한다.
가장 좋은 신학적 지도는 명확하되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기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인간적 요소이든 성경적 요소이든 제시하는 것이 정확하다.
둘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하나님 중심이다.
셋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영광스러운 노래와 같다.
넷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미래 지향적이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여섯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교회 중심이다.
일곱째, 좋은 신학적 지도는 자유에 초점을 맞춘다.
2. 하나님의 계획/신앙생활의 기본 반향
길을 잃은 세상
하나님이 생명을 만드셨으며 그분만이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를 말해 주실 수 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을 읽으라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한 권의 책, 곧 주제 하나를 가진 이야기로 읽기 원하신다. 성경은 별개 단위로 구성되었으며 일부는 그 자체가 완성된 것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단 하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은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설명하며 놀라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통합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 속 하나님의 계획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사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하신 일을 사실적으로 개관하고 선지자와 시편 기자, 현자와 사도가 설명하는 주석을 붙여 놓은 것이다. 성경의 주제는 인간 구원이 아니라 죄 많고 무질서한 우주에서 당신의 목적이 정당함을 입증하시고 당신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임
첫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당황하고 놀라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다.
둘째, 하나님은 섭리로 세상을 다스리면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려 주지 않으셨는가? 그걸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이 행하시는 목적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한 쓰라린 경험들의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이유를 알려 주셨다.
세 번째 질문은 하나님이 그분 자녀를 다루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단지 그들의 행복인가, 그 이상의 어떤 것인가?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된 은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온갖 반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첫째, 예배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린다.
둘째,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광을 돌린다.
셋째, 그분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영광을 돌린다.
넷째,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
다섯째,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함으로 영광을 돌린다.
여섯째, 우리의 죄에 대한 그분의 의로운 정죄에 굴복함으로 영광을 돌린다.
일곱째, 일상생황에서 하나님을 위대하시게 하려고 애씀으로 영광을 돌린다.
참으로 경건한 사람
경건한 사람은 사람의 최고 소명이 하나님 영광의 수단이 되는 것이라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큰 만족과 감사의 원천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3. 하나님과 만남/신앙생활의 기본관계
하나님의 거룩함
신학사전에서 거룩한이라는 말을 찾으면, 이 단어는 신약이나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께 사용되었다. 하나님을 우리와 구별하여 뭔가 다른 존재가 되게 하는 모든 것, 하나님을 우리 위에 두어 우리의 경배와 경외의 대상으로 만드는 모든 것, 하나님을 우리와 대비시켜 정말 두려운 대상이 되게 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다. 또 그 단어의 기본 개념은 하나님이 우리와 분리되고 대조되는 점이다.
하나님의 다섯 자질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첫 번째 자질은 주되심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두 번째 자질은 위대함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세 번째 자질은 가까이 계심, 편재함, 곧 어디서나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네 번째 자질은 정결함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는 다섯 번째 자질은 자비, 곧 이사야가 죄를 고백했을 때 정결하고 깨끗하게 했던 자비이다.
2부 길 떠나기/쾌락과 사치
4. 온천탕교회
온천탕에서 본 광경
현대 서구인이 종교에 의지할 때,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느긋함과 즉시 진정되고 격려 받고 힘들이지 않고 활기를 얻는다는 느낌, 간단히 말해 온천탕 종교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을 구하고 공급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온천탕 종교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지만 기독교에 온천탕 요소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면, 즉 힘든 임무나 인기 없는 태도나 심신을 지치게 하는 관계를 살짝 피하고 느긋함과 행복한 느낌이라는 자기 이익에 골몰하는 쾌락주의 빠진다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중심 되심과 예수님이 명하신 십자가를 지는 삶을 놓치는 것이다.
1. 온천탕 종교에 대한 첫 번째 진술은 온천탕 종교는 대체로 옳다는 것이다.
2. 온천탕 종교에 대한 두 번째 진술은 온천탕 종교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3. 온천탕 종교에 대한 세 번째 진술은 온천탕 종교는 우리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적 인생관을 반영하고 구현한다. 성경적 기준으로 보면 세속적이며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온천탕 종교는 즐거움에 몰두하다가 타락한 기독교이다.
온천탕 종교의 증후
그리스도인의 이혼과 재혼율이 엄청나게 급등한 것, 성적 탈선에 탐닉하는 것, 표적과 기사와 환상과 예언과 기적을 찾는 과열된 초자연주의, TV와 라디오 설교나 자유주의적 설교에서 끊임없이 진정제를 찾는 것, 반지성주의적 감상주의와 종교적 마약인 정서적 도취감을 의도적으로 개발하는 것, 일상생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치를 받아들이는 것 등이다.
하나님의 치료책
첫째, 인생을 두 세상이라는 견지에서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도ㅠㅣ게 행동하기는 고사하고 더 이상 그런 구별을 이해조차 못한다. 오늘날 세상을 본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자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채택하는 수단만 본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 목표들 자체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주변의 세상이 쾌락과 이득과 특권을 추구하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목적을 거절할 의향도 힘도 없다. 현재 기독교는 거룩함보다는 행복을, 내세의 축복보다는 이생의 축복을 강조한다. 건강과 부를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 여기고, 죽음 특히 일찍 주는 것은 죄 많은 세상의 비참함에서 해방되는 감사한 일이 아니라 최고의 재앙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믿음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소망은 삶을 변화시키는 동기이다.
5. 지뢰밭 인생: 여가와 사치를 즐기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
여가와 생활방식
생활방식이란 풍요로운 소비주의 사회에서 여러 선택권 가운데 우리가 선택하는 것, 앞서 말한 사치품뿐 아니라, 옷, 음식, 취미생활, 휴가, 거주지, 자동차, 클럽, 직업, 동료, 오락, 교회 등에 대한 선택으로 형성된 삶의 방식을 묘사하는 포괄적 용어이다.
생활방식과 관련해서 직면하는 문제
첫 번째 문제는 우상숭배, 곧 거짓 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성경에서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삶을 통제하고 형성하는 것은 무엇이든 실제로 그 사람이 섬기는 신이며, 인간은 어떤 신에게든 개인적으로 굴종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우상화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은 노는 것을 우상화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가 활동을 우상화하고, 어떤 사람들은 은행 잔고와 사회적 지위나 권세를 우상화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중독되어 있는 것들을 신으로 삼는다.
두 번째 문제는 쾌락주의다. 쾌락주의는 쾌락의 삶의 최고 가치로, 무조건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떠받드는 것이다. 쾌락주의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자 미덕이며,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봉사라고 말한다. 성경적 기독교는 어떤 쾌락이나 좋은 감정, 또는 어떤 형태의 편안함이나 만족도 인생 최고 목표로 추구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예배와 섬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목표이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예배의 중심이라고 가르친다.
세 번째 문제는 실용주의다. 어떤 것의 가치는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얼마나 유용하고 생산적인가에서 발견된다는 견해이다. 실용주의 사고는 오늘날 과학 기술과 사업 영역에서 매우 널리 적용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근본적인 단점이 있다. 목적을 위한 사단으로서 어떻게 평가하건 그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고유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이상적인 삶: 구속받은 삶
첫째,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하여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의 삶이다.
둘째, 이 구속된 삶은 이웃 사랑의 삶이다.
셋째, 구속받은 삶은 자유의 삶이다.
넷째, 구속받은 삶은 기대의 삶이다.
일 하라는 부르심
일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일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창의성을 발휘할 배출구가 없어서 영원토록 불만족스럽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상태로 살 것이다. 일터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훈련하고 드러내는 장이다. 그리스도의 성품이란 성실함과 자원을 책임지는 청지기 의식, 이타적 동정심과 충성심, 황금률의 시행, 탁월함에 대한 열정, 인내 있게 꾸준히 선을 행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일은 어떤 종류이든 생존이나 돈 버는 것, 개인적 또는 직업상 진보 등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수단 이상의 것이다.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여가의 역할
여가는 사람들이 인간 특유 가치들을 회복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가족간 유대를 강화하고 자연을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여가는 온전함, 감사, 자기표현, 자기 성취, 창의력, 개인 성장, 성취감 등을 가져 올 수 있다.
3부 길 걷기/변화와 성숙
6. 인도/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지난 150년 이상 그리스도인의 의사결정에서 이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쓸 때 생각과 지혜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지혜에 입각한 판단을 내리기보다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인도 방식을 바라게 되었다. 왜 그런가?
첫째, 그리스도인 마음에 밀어닥치는 오늘날 세속 문화의 반지성적이고 감정 지향적이며 단기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둘째, 흠모할 만한 겸손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상적인 행동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계시를 원한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에 입각한 판단이 아니라 통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비합리적인 것을 행하기 원하신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인 각자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대상이기 때문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를 받을 수 있다고 멋대로 공상하는 것 때문이다.
다섯째, 성경 이야기에서 직접적인 계시로 인도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인도가 보통 이런 식으로 주어진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 “내가 하나님을 위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
2. 성경의 지시들을 살펴보라.
3. 성경에 나오는 경건함의 본을 따르라.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을 본받으라. 그러면 크게 잘못될 수가 없다.
4. 지혜가 최선의 행동 방향을 판단하도록 하라.
5.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시는 신호들을 유의하라. 특별한 관심이나 마음의 평안이 없는 건 뭔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6. 바울이 하나님 뜻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키신다고 안전하고 한결같이 지켜 보호하신다고 말한 신적인 평강을 간직하라.
7. 환경이 가진 한계를 관찰하라. 그 한계들을 변화될 수 없음이 분명할 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이라고 받아들이라.
8. 결정을 내릴 만한 적절한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이 인도를 보류하실 수도 있음을 각오하라. 하나님은 보통 한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신다.
9. 하나님이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을 하라고 지시하고는, 그것을 좋아하도록 가르치실 수 있다. 그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
10. 설사 부적당한 결정을 내렸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라. 하나님은 용서하시며 회복시키신다.
공상과 현실의 분별
신적인 인도를 받는 내적 경험은 보통 어떤 표적을 보거나 음성을 듣는 것이기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된 인도
성령은 지켜야 할 성경적 지침들, 지향해야 할 성경적 목표들, 그리고 경고 받아야 할 나쁜 모범들과 본받아야 할 성경적 모범들을 이해하도록 도우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분은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잘 따를 수 있는지에 관해 지혜를 주시면서 기도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분은 영적 성장과 하나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을 주심으로 인도하신다. 그 결과 영적 우선순위들이 더 분명해지고 앞으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혜와 경험이 더 풍부해진다.
7. 기쁨/ 우리가 누려야 할 기쁨은 무엇인가?
기쁨은 귀중한 것
기쁨은 만족스러운 삶의 핵심이다. 그것인 또한 믿을 수 있는 진정한 기독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흔들어 놓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기쁨을 규정함
첫째, 기쁨은 재미나 놀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둘째, 기쁨은 유쾌함, 즉 언제나 파티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의 넘치는 쾌활함이 아니다.
셋째, 기쁨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 것과 다르다.
기쁨은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상태이지만 감정 이상의 것으로 대개 마음 상태를 말한다. 생각과 감정이 결합하여 낳은 총체적인 행복감을 전인적으로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기쁨의 원천
첫째, 기쁨은 사랑을 받는다는 인식에서 흘러나온다. 자신을 귀중히 여기고 받아 주고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아무도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존재이고, 누구에게도 중요한 존재가 아니며, 아무도 나에게 일어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둘째, 기쁨은 자기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흘러나온다. 매사에 언제나 안달복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길 바라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기쁨을 누릴 자격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셋째, 기쁨은 값어치 있는 것을 가지는 것에서 흘러나온다.
넷째, 기쁨은 줄 만한 것을 주는 것에 흘러나온다. 자기중심적인 이 세대는 주는 것이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8. 성경과 성화/성경은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어떻게 돕는가?
성화란 무엇인가? 그 단어는 근원적으로 보면, 관계적인 또는 위치적인 의미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면에서건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서건, 하나님을 위해 따로 떼어놓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 바로 성화되는 것이며 신성하게 되는 것이다.
성화의 길을 잃은 현대 그리스도인
중생이 새로운 창조의 역사라면 성화는 새로운 형성의 역사이다. 곧 중생이 새로운 탄생이라면 성화는 새로운 성장인 것이다. 중생이 우리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을 심어 넣는 것을 의미한다면 상화는 우리 성품이 죽고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넘치는 것을 의미한다.
1. 성화의 배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신칭의이다. 성화된 사람들은 의롭다 함을 받은 죄인들로, 은혜로 구원받고 날마다 자기 잘못을 끊임없이 용서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 성화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다. 거룩한 삶은 우리가 경건한 삶을 위해 가지고 있는 어떤 천성적인 잠재력이나 자원의 열매가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이다.
3. 성화를 이루는 주체는 성령으로, 그분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기쁨과 찬양을 적극 바라고 그것을 위해 일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행하는 것은 우리이다.
4. 성화의 형태는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내주하는 죄와의 싸움이다.
5. 우리 거룩함의 규칙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감사와 호의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 거룩함의 핵심이다. 우리의 거룩함은 예수를 닮는 것, 즉 그의 제자들 안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도덕적 영적 특질인 성령의 열매를 보이는 것으로 표현된다.
9. 변화의 자취/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진정한 변화
성화란 성령의 권능으로 실천하는 헌신과 회개이며, 변혁이란 우리가 그 일에 착수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더욱 변화되는 삶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은 변혁을 진전시킨다.
회개와 순종 가운데 사는 것은 변혁을 진전시킨다.
의존과 기대 가운데 사는 것은 변혁을 진전시킨다.
굴복과 꾸준함 가운데 사는 것은 변혁을 진전시킨다.
찬송과 헌신 가운데 사는 것은 변혁을 진전시킨다.
교제와 봉사의 삶을 사는 것 역시 변혁을 진전시킨다.
4부 걸림돌 걷어내기/치유와 갱신
10. 허약함/육체적인 회복과 치유
허약함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질병도 없었을 것이다. 타락과 질병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질병은 타락의 결과이다.
신유에 대한 관심
첫째 이 땅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변치 않으셨다. 그분은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으셨다. 그때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던 지금도 그 일을 하실 수가 있다.
둘째, 성경에 나오는 구원은 총체적인 것으로 영혼과 육체를 모두 포괄한다. 육체의 구원 없이 또는 육체의 구원과는 별개로 영혼만의 구원을 생각하는 비성경적이다.
셋째,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의 선물을 구하지 않을 때 축복을 놓치게 된다.
11. 실망, 절망, 우울증/괴로운 마음을 만지시는 예수님
12. 너 자신을 알라/정체성과 자아상
나는 누구인가?
가정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애정에 굶주린 어린아이들은 보통 낮은 자아상, 곧 자신이 가치 없으며, 보잘 것 없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을 지닌 채 성인이 된다. 어린 아이들의 삶에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부모와 학교 교사들이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자아상과 관련한 사랑의 네 가지 요소, 곧 칭찬과 격려와 관심과 도움을 보여 주지 않으면 엄청난 해를 끼를 수 없다. 그런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서 어린아이들에게 기대치나 가족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상처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상상력과 공상력이 큰 아이일수록 더 쓰라린 경험이 될 것이며 스스로 소외될 것이다.
낮은 자아상과 거기에 뒤따라오는 자신의 무가치성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정서적인 태도로서, 마치 짙은 색안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안경을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연관해서 보는 것이다.
첫째 낮은 자아상은 억압되고 충동적이며 강박적인 여러 가지 행동을 낳는다. 불확실함, 불안정, 자존감의 결여, 결단력 부족, 잦는 불화, 냉소주의, 나서기 잘하고 미친들이 날뛰는 걳, 고침과 움츠림, 자신을 실망시키고 상처 주는 사람들과 관련된 인종·계층·개인에 대한 증오, 권력에 몰두하는 것과 실력 행사, 수동적이고 남을 희생시키는 관계들, 약물 의존 및 중독, 이성이나 동성끼리의 성적 난잡함 등이 직접적인 결과일 수 있다.
둘째 낮은 자아상은 복음의 메시지를 전심으로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된다. 권위자에 대한 적대감은 하나님까지 확대되어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더 믿기 어렵게 한다.
자신을 알 때 배우게 되는 것
첫째,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늘 아버지와 우리와의 망쳐진 관계를 변화시키시는지 알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지는 우리의 망쳐진 본성을 변화시키시는지 알게 된다.
영적인 자아상
첫째, 하나님과 관련해서 우리는 자신을 상속자로 보아야 한다.
둘째, 이생과 관련하여 우리는 자신을 여행자로 보아야 한다. 영원히 여기 거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가고 있는 순례자로서, 여기서는 섬기기만 하고 정착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겨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세상이 끌어당기는 힘, 죄의 선동, 사단의 배회와 관련하여, 우리는 자신을 투사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조용히 살아가거나 편안히 통과하기를 바랄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공급하시는 갑옷과 무기를 가지고 적의 전선을 뚫고 전진해야 한다.
넷째, 다른 사람들, 특히 다른 그리스도인과 관련해서, 우리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 집을 지는 사람, 나누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13. 권능의 길/성령을 진지하게 구함
높아진 기대치
1. 초자연적인 것을 강조하고 그와 관련해 그리스도인들의 기대를 고양시키는 것은 옳다.
2. 능력 있고 유용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옳다.
3. 필요한 순간 다른 사람의 사람에 신적 능력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옳다.
4.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 전도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 것은 옳다.
5. 의를 위해, 도덕적 승리를 위해, 나쁜 버릇에서 해방되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신적 권능을 받고자 하는 것은 옳다.
6.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에 응답하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 신적인 권능을 받고자 하는 것은 옳다.
권능의 길
권능의 길은 하나님의 권능의 통로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 겸손히 의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에 우리 자신을 열어 놓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가게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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