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마음 챙김의 지혜 100(윤흥식·오병문, 봉황동래)

기독항해자 2012. 8. 3. 15:45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마음 챙김의 지혜 100(윤흥식·오병문, 봉황동래). 2012년 7월에 읽음



목은 이색(1328~1396)

목은 이색은 이성계에 의하여 고려가 망하자 포은 정몽주·야은 길재와 더불어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켜 삼은으로 일컬어지는 당대의 큰 유학자이다. 고려만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고,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게 성리학의 기초를 마련하여 조선의 성리학시대를 여는데 큰 공헌을 한다. 이색은 젊어서 원나라 과거에서 차석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으며, 유학자였지만 스스로 면벽수행을 하기도 하는 등 유·불·도에 거침이 없었다. 당시 불교에 호걸스러운 인재들이 많다고 호감을 표시하는 등, 스님들과도 자유롭게 교유하면서도 그들을 압도하였다. 정몽주·정도전·권근·변계량·이승인·맹사성 등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명신과 학자 대부분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를 알고 남을 돌보라

도를 배우는 자는 경(敬, 항상 마음을 챙기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뜻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誠意正心), 세상에 나아가서 정치하는 자는 경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케 한다(治國平天下).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자 생육신이 되어 세상에 도가 없음을 한탄한 매월당 김시습은, 자취는 불가와 도가에 두고 방외에서 노닌 조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해동전도록에 따르면 김시습은 조선 초 단학의 선주자로도 유명한 바, 홍유손·정희량·윤군평·서경덕·남효온 등에게 단학의 도를 전수하였다. 허목에 따르면 김시습은 “천지 만물의 조화를 말하면서 스스로 자부했으며, 욕심 없이 방외에서 노닐었고 기운의 운행과 변화를 조정하는 술법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시습은 마음을 유학에 두었지만 선어를 짓기도 하고 현묘함을 드러내기도 하며, 당대의 고승들도 감히 대적할 수 없었다. 무량사에서 생을 마칠 때 화장하지 말 것을 유언하였는데, 3년 후에 장사를 지내려고 관을 열어보니 안색이 살아 있는 듯하여 사람들은 부처가 된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사물을 모두 꿰뚫어 본 뒤에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서야 어찌 생각할 수 있을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선禪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禪定선정을 말하는 것이니 ‘편안하고 여유롭다’는 뜻으로만 쓴다. 그러나 이는 禪선이라는 글자가 사수(思修, 생각을 닦음)나 정려(靜慮, 고요하게 생각함)로도 일컬어지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가장 신령하니 인간의 지혜는 만물을 초월한다. 비록 그 신령한 지혜가 드러나기도 하고 숨겨지기도 하여 개인별로 다양하나, 하루라도 배우지 아니할 수가 있겠으며, 하루라도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무릇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을 것이며,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로워질 것이다. 생각이란 사특한 생각이 아니라 도가 되는 바를 생각함이요, 사려라는 것은 광기어린 사려가 아니라 배움이 되는 바를 사려하는 것이다.

비록 집안의 정원을 거닐고 들에서 기분 좋게 노닐면서 눈으로 보고 마음을 생각하여 자연스럽게 정신을 함양한다 하더라도 감히 배움을 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산에 오르면 그 높은 기상을 배우리라 생각해야 하고, 물가에 가서는 그 맑음을 배우리라 생각해야 하며, 돌에 앉아서는 그 견고함을 배우리라 생각해야 하고 소나무를 보고는 그 지조 있음을 배우리라 생각해야 하며 달을 바라보고는 그 밝음을 배우리라 생각해야 한다.

온갖 모양을 밝은 마음에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각각 그 장점이 따로 있다. 우리는 이 모두를 빠짐없이 배워 그 각각의 오묘한 바를 정밀하게 연구하여 하느님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도의 궁극적인 경지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미워하라

군자는 반드시 자신을 닦아야 하니 자신을 닦을 때는 반드시 단정하고 엄숙하게 해야 한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일어날 때에는 항상 “게으르지 않은가?”를 조심하여야 한다. 잘 살피지 아니하면 문득 허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가짐은 가득 찬 걸 받들고 옥을 잡듯이 조심해야 한다. 밖으로는 의로움으로 (사사로운 욕망의 일어남을) 방어하고 안으로는 항상 정신을 차려서 올곧음을 유지해야 한다. 경(항상 깨어있음을 유지하고자 노력함)을 이루고 성(誠, 깨어있음의 극치)을 보존하여 에고를 제압하고 그 욕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행동거지와 그 위엄 있는 몸가짐을 잘 정돈하여 스스로 닦고 삼가야 한다.

군자란 죽는 그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자신을 항상 돌아보며 깨어서 존재하는 성스러운 존재다. 군자는 이렇다 저렇다 남을 판단하면서 시간을 허송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을 문제 삼는다.

한훤당 김굉필(1454~1504)

한훤당 김굉필은 16세기 초 도학정치의 대가이자 개혁가인 조광조의 스승이다. 어릴 때에는 너무 호탕하여 사람들을 때리고 다니는 일이 많아 사람들이 기피하였는데, 자라면서 학문에 힘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생활의 근본으로 삼고 스스로 소학동자라 칭하였다. 김굉필은 평상시에도 반드시 갓을 쓰고 방에 고요히 앉아 책을 보면서 밤이 깊도록 자지 않았다. 다만 갓끈이 책상에 닿아 소리가 나면 그 소리로 그가 아직도 책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닦이 울면 일어나 종일 똑바로 앉아 학문을 닦기를 쉬지 않았다.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죽임을 당하였는데, 형장에서도 얼굴빛을 편안히 하고, 수염을 간추려 입에 머금고 “이 수염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당하게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화담 서경덕(1489~1546)

박연폭포·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유명한 화담 서경덕은 조선시대 기철학의 선구자이다. 독창적인 학풍으로 유명하여 ‘화담집’은 청나라의 ‘사고전서’(청 건륭제가 중국역대의 모든 서적들을 집대성한 책) 별집류에 편입되어, 외국의 문집에 포함된 것은 천 년에 한 사람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열여덟 살 때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의 대목에서 크게 깨달아, 하늘의 이치를 알고자 하면 天자를 벽에 써 붙여놓고 궁리하고 또 다른 글자를 써서 연구하였으니, 이런 식으로 3년 동안 사물의 이름들을 벽에다 써 붙여 놓고 밤낮으로 고요히 앉아 원리를 깨달을 때까지 사색하였다고 한다. 격물치지의 심법인 정려법을 통하여 만물의 근본원리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서경덕은 유불선에 통탈하였으며 전설도 많이 전해온다. 당대의 유명한 산림처사인 조식·성운·성제원 등과 교유하였고, 제자들로는 단학인물로 유망한 박지화, 기인 이지함, 동인의 영수이자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 서인의 영수이자 청백리 정승으로 유명한 박순, 이인으로 유명한 서기 등이 있다.

고요함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부를 해야 생각도 없고 허물도 없는 경지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이른바 경(항상 깨어있음)을 유지하고 사물의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이란 ‘정신을 하나로 모아서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함’(主一無適)을 말합니다. 하나의 사물에 접하여서는 그 접하는 사물에 온전히 집중하여 머무르고 하나의 일에 대응할 때는 그 대응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여 머물러서, 다른 사물과 일에 끼어들 틈이 조금도 없어야 마음이 능히 하나로 집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접하는 일이 지나가고 사물이 사라진 뒤에는 다시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맑게 함이 마땅히 밝은 거울이 텅 빈듯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공부가 숙달되지 못하면 바야흐로 정신을 하나로 집념할 때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니,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누가 될 뿐입니다. 반드시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공부가 오래되어야 능히 고요함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어서 밖으로도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도 머무름에 정체되지 않게 되니, 그런 뒤에라야 생각도 없고 하는 일도 없다는 경지에 거의 이를 수 있습니다.

퇴계 이황(1501~1570)

퇴계 이황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중국에서 주자가 죽은 뒤 성리학의 도통이 이황으로 인해 조선으로 넘어갔다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사화 등으로 관직을 떠나 경상도 청랸산 자락과 도산서당에서 학문에 매진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당시 수없이 사퇴를 되풀이하는데도 명종과 선조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조정에 불러들일 정도 퇴계의 학문과 인품을 존경하였다.

항상 깨어있되,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궁리(窮理, 사물의 근본원리와 인과관계를 연구함)와 거경(居敬, 정신을 상항 깨어있게 유지함)공부는 서로 수미가 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 공부가 됩니다. 둘로 나눔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두 가지 공부가 서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뒤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부터 공부를 시작하십시오. 이럴까 저럴까 머뭇거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힘을 써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사물의 근본원리와 인관관계를 관찰할 뿐, 절대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조금씩 공부를 쌓아나가는 중에 순수해지고 익어가는 것이지 단기간에 효과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체득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죽을 때까지의 평생 사업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사물의 이치가 남김없이 이해되고 깨어있음이 전일하게 되는 것은 모두 공부가 깊이 나아간 뒤에 자연히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찌 한순간에 깨달아 이내 성불했다는 사람들처럼 황홀하고 아득한 중에 그림자만 얼핏 보고서 가장 큰 일이 다 끝났다고 외치는 것과 같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이를 실천하여 증험해야 비로소 ‘참된 지혜’가 될 것이며, 항상 깨어있음을 유지하여 마음이 한순간이라도 둘로 셋으로 갈라지지 않아야 비로소 ‘참된 체득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다

정신을 하나로 집중함이란 다만 정신을 전일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일이 없을 때에는 마음을 맑고 편안하며 고요하게 하되 요동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며, 일이 있을 때에는 일에 따라 대응하고 변화하되 마음이 다른 데(지금 이 순간하는 일이 아닌 것)로 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되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은 곧 ‘사사로운 생각’이 됩니다. 일이 이미 지나갔는데도 마음에 잊어버리지 못하고, 몸은 여기에 있는데도 마음은 저기에 가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지루하고 혼란스러움’은 ‘정신을 하나로 모아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게 함’과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정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경재잠

1. 어긋나지 않게 함(不違)

의관을 바르게 하고 논매를 존엄하게 하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히면 하느님을 대할 수 있다. 발은 반드시 무겁게 하고, 손은 반드시 공경스럽게 해야 하니, 땅도 가려서 밟아 개미집 두덩까지도 피해서 돌아가라.

2. 서로 바로잡아 줌(交正)

집을 나서서 사람을 대할 때는 늘 손님을 뵙듯이 해야 하며, 일을 받들어 처리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항상 조심하여 혹시라도 경솔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헛된 말 안하기를 병마개 틀어막듯이 하고, 헛된 생각 막기를 성 지키듯이 하여, 항상 공경하고 조심하여 조금도 경솔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3.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음(無適)

동쪽을 가야하는 데 서쪽으로 가지 말며, 북쪽을 가야하는데 남쪽으로 가지 말아야 하니, 그 일을 당하여서는 그 일에만 마음을 두어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4. 정신을 하나로 집중함(主一)

마음에 두 가지, 세 가지를 품어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온갖 변화에 대처하기를 거울이 만물을 비추듯 하라.

5.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것을 “항상 깨어있음을 유지함”(持敬)이라 하니,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어긋남이 없고, 안과 밖이 서로 바로잡아 주도록 하라.

6. 틈이 있음(有間)

잠깐이라도 틈이 벌어지면 개인적인 욕망이 만 갈래로 일어나니 불이 없이도 뜨거워지고 얼음이 없이도 차가워진다.

7. 오차가 생김(有差)

또한 일이 털끝만큼이라도 오차가 있다면, 하늘과 땅이 뒤집어 지고 삼강이 멸해지고 구법이 문란해질 것이다.

8. 아 배우는 이들이여! 항상 이것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공경할 지어다. 먹을 갈아 경계하는 글을 써서 감히 영대(마음)에 고하노라.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1. 새벽에 잠을 깸(夙寤)

닭이 울어 잠을 깨면 이런저런 생각이 점차 치닫게 되니, 어찌 그 사이에 마음을 맑게 정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은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기도 하고, 혹은 새로 깨달아 얻은 바를 잘 정리하기도 하여 차례대로 조리를 세워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2. 새벽에 일어남(晨興)

근본이 이미 확립되었으면 잠을 깨고 일어나야 한다.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갖춰 입고, 단정히 앉아 몸가짐을 가다듬고, 마음을 잘 챙겨서 솟아오르는 태양과 같이 밝게 해야 한다. 몸가짐을 엄숙히 정돈하고 마음을 텅비고 밝고 고요하며 한결같게(虛明靜一) 해야 한다.

3. 독서(讀書)

이런 뒤에 책을 펼치니 성현들을 직접 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공자께서 앉아 계신 듯하고, 안자와 증자께서 앞뒤에 계신 듯할 것이다. 성현의 말씀을 친절히 경청하고, 제자들의 묻고 분별함을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4. 일에 대응함(應事)

일이 생기면 이에 대응하여 실천으로 증험해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밝은 명령이 훤히 빛나고 있으니 항상 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일에 대응함이 이미 끝난 뒤에는 나는 곧 예전의 나로 돌아와야 한다. 즉 마음을 맑게 하고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5. 낮에 부지런함 (日乾)

움직임과 고요함이 돌고 도는 것을 오직 이 마음으로 거울처럼 비춰보아야 한다. 고요할 때는 마음을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마음을 살펴야 하니,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려서는 안 된다. 독서하고 남은 시간에는 마음을 여유롭게 노닐게 하여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성품과 감정을 고요한 중에 배양해야 한다.

6. 밤에 조심함

날이 저물면 사람이 권태로워져서 혼미한 기운이 엄습하기 쉬우니 몸가짐을 가다듬어 장엄하고 정돈되게 하여 정밀하고 밝음을 진작시켜야 한다. 밤이 깊어진 뒤에야 잠자리에 들되,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아서 자야한다.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마음과 정신이 돌아가 쉬게 해야 한다.

7. 새벽과 밤을 겸함(兼夙夜)

야기(새벽 3~5시 사이의 청명한 기운)로써 잘 길러 나가야 한다. 이미 고요함이 지극하면 움직임이 돌아오느니라, 이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쓸지어다.

남명 조식(1501~1572)

남명 조식은 경상좌도의 이황과 쌍벽을 이루어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사화로 인해 참 선비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고 지리산 아래에서 산림처사로 이름을 날렸다. 조식은 제자백가·천문지리·병법 등에도 능통하였고, 특히 도가사상에도 깊은 조예가 있어 장자에 나오는 붕새의 최종목적지인 남명에서 호를 취하였다. 공자·주렴계·정명도·주자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 병풍을 만들어 아침마다 절을 올렸으며, 젊어서부터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꿇어앉아 흔들리지 않게 받쳐 들고 밤을 새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또한 차고 다니는 칼에는 敬과 義를 새려놓고, ‘惺星子’라는 쇠방울을 차고 다니며 항상 정신의 깨어 있음을 유지하려고 하였으며, 밖으로는 현실대응력으로서의 의를 실천하였다. 이러한 학풍으로 인해서 훗날 임진왜란 때 곽재우를 비롯한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의 대부분이 남명의 문하에서 일어났다. 이준경·성수침·성운·성제원·서경덕·이지함 등 당대의 저명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학문은 마음챙김에 달려 있다

경은 학문의 시작이다 끝을 이루는 것이다. 처음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부터 성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을 주로 함으로써 도에 나아가는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학문을 하되 경을 주로 하는 공부가 빠져있다면 그 학문은 거짓이 되고 만다.

맹자께서 말하기를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으니, 흩어져 있는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경을 주로 하는 공부이다. 옛적부터 성현들이 남긴 책이 많으나. 이 한마디가 지극하고 극진하다. 배우는 사람들이 이 마음을 잘 거두어들여 오래도록 잃지 않는다면, 온갖 사특함이 저절로 사라지고 만물의 이치에 저절로 통할 것이다.

북창 정렴(1505~1549)

북창 정렴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단학비결서인 ‘용호비결’을 지은 단학인이다. 어려서부터 예지력과 기이한 행적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는데, 당시 인종은 인재를 보는 눈이 뛰어나 자신의 방 병풍 뒤에 영의정 갖바치(백정이었으나 조광조가 높이 평가한 인물), 좌의정 서경덕, 우의정 정렴이라고 써놓았으나, 너무 빨리 죽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정렴은 부친 정순붕이 을사사화를 일으키는 주역이 되자 적극 말리다가, 결국 포천현감직을 버리고 경기도 양주 괘라리에 은거하여 단학에 매진하다가 44세에 선화한다.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였던 박지화와 절친하였고, 고경명·남사고 등과도 교유하였다. 허목은 “정렴은 남과 이야길 할 때는 단 한마디라도 공자의 학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그 깨달음은 죽과 같고 그 행적은 노자와 같았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성인으로 종지를 삼아서였을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하서 김인후(1510~1560)

하서 김인후는 조선중기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과거합격후 독서당에서 이황과 함께 공부를 했는데. 의기투합하여 훗날 퇴계가 “함께 교유한 사람은 오직 하서 한 사람뿐이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성군으로 평가받던 인종을 세자 때 가르쳤는데, 인종이 8개월 만에 승하하자 비통해하며, 때마침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해 학문과 제자양성에 몰두하였다. 훗날 정조는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서 한 사람뿐”이라고 칭송하였다. 하서는 성과 경을 중시한 정통 성리학자였는데 실제로 내단수련에도 심취하는 등 도가사상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