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본받아(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최예자 옮김, 프리셉트), 2012년 7월에 읽음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1380년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켐펜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토마스 하메르켄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라는 이름은 ‘켐펜의 토마스’라는 뜻이다. 토마스는 13세 때 네덜란트 데빈터에 있는 공동생활형제회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공동체와 토마스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5살 연상인 그의 형 요한을 통해서였다. 요한은 공동생활형제회의 일원으로 수 년을 보내던 중에 어린 토마스를 위해 플로렌티우스 라더빈스에게 소개장을 써주었다. 라더빈스는 그루테가 전염병으로 죽은 해(1384년)에 그의 뒤를 이어 공동생활형제회의 감독을 계승한 인물이었다. 라더빈스의 지도하에 토마스의 전생애는 그루터가 일으킨 영적 운동에 몰입되었다.
토마스가 거의 20살이 되었을 때, 그는 형이 원장으로 있는 츠볼레의 근처의 성 아그네스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토마스는 연구와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1406년에 수도원의 훈련을 마치고 수련 수사가 되었고 1413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426년에 수도원의 부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지역 교회와 교화의 분쟁으로 인해 공동체가 1429년부터 1432년까지 3년간 그 지역을 떠난 것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공동체 아에서 보냈다. 그는 오랜 세월 후진 수도사들을 지도하다가 성직을 맡은 지 58년 만이 1471년에서 암스테르담 근교를 츠볼레에서 92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토마스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초점을 두었으며, 그의 작품은 모두 이러한 그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는 또한 연설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는 온유하고 지혜로운 성품으로 상대방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에 힘썼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던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 수도회의 초심자를 교화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가 주로 담당한 일은 책을 다루는 것으로 성경과 필사본을 복사해서 일부는 수도원에서 사용하고 일부는 팔았다. 그는 설교집, 학술 논문, 자서전, 경건 서적 등의 다양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책은 삶의 중심이었다. 다음은 그의 고백이다. “나는 행복을 찾기 위해 이러저리 뛰어 다녔다. 그러나 몇 권의 책이 있는 비좁고 구석진 방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듯 책을 사랑한 그는 수도원의 연대기를 기록하는 직분을 맡아 성 아그네스 수도원의 연대기를 쓰던 중 사망했다.
토마스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라틴어로 기록된 ‘그리스도를 본받아’이다. 본래 독일어로 기록된 이 책은 수도원의 가르침과 지혜를 모아 놓은 것이다. ‘영적인 삶을 위한 조언’과 ‘내적 평화를 누리는 비결’, ‘성만찬’ 등의 내용으로 영혼을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가치를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동시에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눌 것을 강력히 권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1427년에서 1450년경에 완성되어, 적어도 250권의 필사본이 만들어졌다.
무익한 종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사람을 소수에 불과하다. 위로를 구하지만, 시련을 원하지는 않는다. 예수님의 식탁에 와서 앉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그분의 금식에 동참하는 이는 적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원하지만, 주님을 위한 고난은 마다한다. 일용할 양식을 얻고자 주님을 따르면서도, 주님의 고난의 잔은 거부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분이 당하신 십자가의 수치 앞에서는 몸을 도사린다. 고난이 닥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위로를 받는 동안은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성도들의 모습이다. 때가 아니어서, 혹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잠시 모습을 감추거나 우리를 떠나시면 불평을 일삼고 금세 낙심한다. 그러나 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련 속에서도 예수님을 찬양한다. 그들에게는 어려움의 순간이나 크나큰 은혜를 받는 순간이 동일하다. 주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이 지니고 있는 힘은 얼마나 강력한가!
위로만을 구하는 사람들은 ‘삯군’이다. 그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전재산을 내어놓는다 해도 그것은 대단치 않으며, 깊은 근심 속에 자복하고 통회한다한들 미흡하다. 온갖 지식에 통달했다 해도 한참을 더 가야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선행에 힘쓴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모든 것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적인 자기 부인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진리가 말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야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 그때 비로소 그는 참으로 가난하고 벌거벗은 심령이 되어 다음과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시25:16).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를 가장 하찮게 여길 때, 비로소 하늘로부터 오는 가장 큰 위로와 기쁨이 함께하게 된다.
시험을 만날 때
세상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우리는 역경과 시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다(욥7:1).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과 유혹에 대해 살피고,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마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다. 온전히 거룩한 자는 아무도 없으며, ‘나는 유혹과 무관하다’고 말할 인생도 없다.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우리는 유혹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시험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때때로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시험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순결을 회복하며 연단을 받기도 한다.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 많은 역경과 시험을 통해 유익을 얻었으며, 시험을 견디지 못한 자들은 타락과 세상의 물결에 힘쓸려 갔다. 시험과 역경이 범접하지 못할만큼 성스러운 직분도, 은밀한 장소도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시험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왜냐하면 시험의 근원이 바로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험의 근원을 지닌 채 태어났다. 그러므로 한 가지 고난이나 시험이 지나가면 또 다른 시험이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가 항상 고통을 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의 극치인 낙원에서 추방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까지도 유혹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유혹이란 도망을 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함과 참된 겸손으로 맞서 원수보다 더욱 강해져야 한다. 폭력이나 자신의 의지로 맛서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극심한 시험을 만났을 때는 가까운 믿음의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조언자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가혹하게 대하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 상대방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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