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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혁명-퇴계 21세기에 도전장을 던지다-(김호태, 미래를 여는 책)

기독항해자 2012. 7. 14. 09:30

퇴계혁명-퇴계 21세기에 도전장을 던지다-(김호태, 미래를 여는 책), 2012년 7월에 읽음



우리 사회에서 퇴계에 대한 평가는 '보수적이다', '관념적이다', '사대적이다', '모방적이다'라는 정도였다. 여기에 양반 지배질서의 기반을 닦은 유학자에 지나지 않으며, 봉건사회의 통치제도와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전적으로 기여한 철학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퇴계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부정적인 평가를 던진 지식인들의 실명과 저술, 그리고 발언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전면적인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들은 학자, 철학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총 13명이다. 퇴계의 사상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이 시대 저명한 학자 및 필자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적시, 비판함으로써 밝혀낸다.

율곡을 ‘보수주의자’로 보는 이유 4가지

1. 동서분당의 와중에서 보인 율곡의 모습을 통해서

율곡은 전환시대의 인물이다. 율곡(1536~1584)의 자연적 생애는 채50년을 넘지 못했고 공적 생애는 과거를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20년을 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생애는 거의 정확히 조선의 전환기에 가로 놓여 있었다.

율곡은 훈구·척신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명종 말기에 출사해서(1564) 바야흐로 사림들이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하던 이른바 붕당시대 초기에 활약했던 사람이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1453)으로 치면 120여 년, 무오사화(1498)으로부터 70여 년 공신 귀족들이 조선을 요리하던 한 시대가 지나고, 사림이라고 하는 지식인 집단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던 시대였다.

동서분당은 오랜 훈구·척신 지배하의 왜곡된 정치질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 사림의 시대를 맞아 구시대의 훈척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자는 원칙론의 입장이 동인이었고, 사림의 이상에 동의하는 한 훈척 출신이라도 포용하자는 쪽이 서인이었다. 발단이 된 것은 심의겸의 문제였다.

심의겸(1535~1587)은 선왕 명종의 처남으로서 대표적인 척신이었지만, 사림정권의 출범에 공헌한 바가 있었다. 그는 평소 사림을 옹호해서 많은 사람들을 정계에 등장시켰으며, 그 자신 사림으로 자처하고 있었다. 바로 이 심의겸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사림들 간의 입입장이 갈라졌던 것이다.

율곡은 심의겸의 문제에 있어서 온건한 입장이었다. 율곡은 동서분당 이전에 그 자신 ‘을사삭훈’으로 일컬어지는 을사사화의 무효화 작업을 주도하면서 구체제 척결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서분당 당시에는 새 시대의 운행을 방해할 만한 문제적 인물은 거의 제거되었다고 보고, 이제는 인적 청산에 집착하기보다는 동서가 합심하여 과거 훈척정권에 의해 자행된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고 민생을 안정을 도모하는 제도개혁에 주력하자는 입장이었다.

2. 율곡의 가문과 인적, 지역적 배경을 통해서

동서분당 정국에서 율곡이 한동안 ‘화합’을 명분으로 한 중간자적 행보를 할 수밖에 없ㅎ었던 배경에는 ‘율곡의 딜레마’도 무시할 수 없다. 율곡의 이상은 사림의 그것이었는데, 출신 지역과 가문의 배경과 교우 관계 등은 구기득권층, 즉 훈구계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3. 율곡의 점진주의 개혁사상

진보의 개혁과 보수의 개혁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개혁의 근본성 여부와 속도, 방법에 따른 차이다. 진보주의는 근본적인 처방을 강조하다보니 대체로 급진적으로 흐르지만, 보수주의는 사회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혁을 수용하므로 점진론을 지향하게 된다. 율곡 개혁론의 특징은 점진주의다. 그가 조광조의 개혁론을 비판하면서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하는 점진론을 주장한 것은 그의 개혁론이 보수적임을 말해준다. 또 율곡의 개혁론은 ‘변법경장’이라 하여 제도개혁론 지향이지만, 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자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4. 율곡의 현실주의 철학

보수주의는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한다. 율곡의 철학이 바로 현실을 중시하는 노선이다. 그의 리기론이 그것을 말해준다. 주자학 체계에서 리는 이념적 측면을, 기는 현실적 측면을 표상한다. 율곡의 철학적 입장은 일견 리기지묘라하여 리와 기의 조화와 가치적 대등성, 상호 보완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 같지만, 작용 면에서 보면 기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기 중심적 철학이라고 할 만하다.

율곡에 의하면 리는 형체도 없고 운동 능력도 없는 반면에, 기는 형체도 있고 운동능력도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율곡은 퇴계의 ‘리에도 운동능력이 있다’는 리기호발설에 맞서는 기발리승일도설을 이끌어낸다. 즉 율곡의 리는 운동능력이 없으므로 일체의 동작이나 작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동작·작위를 주도하는 것은 기이고, 리는 단지 움직이고 작용하는 기에 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율곡은 인간과 세계의 모든 현상은 기의 주도하에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율곡에게 있어서 리는 지존의 개념이지만 무기력하다. 비유하자면 입헌군주제 하의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군주의 입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실권은 기에게 있다. 내각책임제의 내각처럼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리가 아닌 기의 책임이 된다. 이처럼 율곡의 체계에서는 퇴계의 경우와 달리 이념적 계기는 무기력하고 현실적 계기만이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고 있어서 현실주의 지향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율곡의 현실주의는 인간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단에 기초한 이념형 인간의 지도력을 우선시 한 반면, 율곡은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소위 칠포사라 하여 사단이 칠정속에 포함되어 있는 구도로 파악하야, 칠정에 기초한 현실적 인간형을 인간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율곡의 인간관은 인간의 불안정성과 인간 이성의 한계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이론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리기론에 대하여

1. 리와 기의 의미

우주론의 입장에서 리와 기의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리는 우주 만물의 생성과 존재의 원인과 근거이다. 따라서 리는 우주 질서요, 자연법칙이며, 우주 창조의 원리로서 이치·원리·법칙의 의미를 갖는다. 한편 기는 모든 사물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형질, 질료이며 에너지이다. 즉 현실세계를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현상적 요소’로서 운동·변화하는 것이 기라면, 그 존재 원리와 운동법칙이 리이다.

둘째 리는 하늘, 기는 음양 오행

셋째 리는 설계도, 기는 건축 재료

넷째 리는 형이상, 기는 형이하

다섯째 서양철학으로 말하면 리는 이데아·형상, 기는 질료이다.

리와 기가 인간의 영역에 적용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리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기준과 표준이며 기는 구체적인 실행자이다. 기가 말이라면 리는 기수이다.

둘째 하늘의 리가 인간에 강림하여 본성을 이룬다면, 음양 오행의 기는 인간의 기질을 이룬다. 리는 인간의 본성이고 기는 인간의 기질이다.

셋째 리는 인의예지이고 기는 욕망이다.

넷째 리는 선하지만, 기른 선악의 양면성을 가진다.

다섯째 리는 이념적 측면이고 기는 현실적 측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