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한국철학사(최영진외, 새문사)

기독항해자 2012. 6. 29. 10:32

한국철학사(최영진외, 새문사), 2012년 6월에 읽음



하나의 철학체계는 그 시대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창조적으로 구축된다. 한민족의 원초적 사유와 역사적 경험이야말로 중국에서 발원한 유교와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전래된 불교를 '한국의 철학'으로 정립시킨 토대이다. 외래사상이 수용된 이후 한국인은 이 외래사상을 매개로 사유를 발전시켜 '한국의 철학'으로 재구성하였던 것이다. 본서는 바로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산출된 철학적 주제들을 분석하여 한국철학사의 근본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편찬한 것이다.

원효의 화쟁사상

원효의 방대한 사상을 굳이 요약해서 말한다면 일심, 화쟁, 무애로 압축할 수 잇다. 마음의 세계로서의 일심과 마음의 통일방법으로서 화쟁, 그리고 자유인의 몸짓으로서의 무애를 통해 시대와 민족과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지눌의 돈오점수 사상

지눌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은 ‘돈오점수’이다. 지눌은 정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교인이 마음 닦는 일에 투철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깨침과 닦음의 선후와 본말을 밝히는 일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깨침과 닦음의 바른 길은 수심인에게는 나침반과 같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할 때 선종과 교종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오점수란 올바른 수심의 길로서 먼저 마음의 성품을 분명히 깨치고 그 깨침을 즉하여 점차로 닦아 가는 선오후수를 말한다. 미혹한 사람이 진리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은 먼저 깨치고, 이 깨침에 바탕하여 닦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적영지심이란?

마음은 공적인 면과 영지한 두 측면이 있다. 공적한 면은 대소·내외·원근·피차·거래·생사·고금·범성·염정·시비 등 일체의 상대가 끊어진 바탕이다. 따라서 일체의 분멸과 이름과 말, 모양이 모두 초월된 적적한 자리이다. 그리고 영지한 면이란 일체의 모든 것을 환히 비추고 아는 신령스러운 작용이다. 공적이 불변하는 마음의 본체, 성을 가리킨다면, 영지는 수연하는 마음의 작용, 상을 가리킨다. 불변과 수연, 본체와 작용, 성과 상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듯이 공적과 영지는 ‘하나인 마음’의 두 면일 뿐이다.

돈오란?

공적영지한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이다. 돈오란 이러한 마음에 대한 깨달음을 말한다.

돈오 후 점수의 필요성

이미 돈오를 하였는데, 다시 또 닦을 필요가 있을까? 이에 대한 문제는 불교는 물론 양명학게 있어서도 철학적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한다. ‘불성’ ‘양지’ 등은 본래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는 닦아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이 한 순간에 드러난 것일 뿐이다. 점차적인 닦음이 필요한 것은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전한 것을 향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것은 닦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일찍이 위진남북조 시대에 도생이 ‘돈오성불론’에서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 관점이 혜능에게 이어져 돈오돈수를 주장하게 마조에게서는 도불용수로 나타나게 된다. 즉 도란 이미 완전하기 때문에 닦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양명학의 좌파에서 주장하는 현성양지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완성되어 이루어진 양지이기 때문에 다시 닦음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완전성화

그러나 육조 혜능의 돈오 입장을 원칙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지눌은 돈오를 하였으나 이에 바탕하여 다시 닦아 나아가야 한다는 ‘돈오 후 점수’를 말하고 있다. 지눌에 의하면 돈오란 불과를 증득한 최후의 완성이 아니라 처음으로 마음의 실상을 눈뜨는 체험이며 따라서 완성을 위해서는 점수가 필요하다고 본다. 마음의 성상을 확실히 아는 것이 구태여 완전한 실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오는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참다운 닦음의 출발이며 진정한 의미의 신(信)의 확립아라고 보고 있다.-->불완전한 성화

돈오점수와 삼문의 관계

삼문이란 원돈신해문·성적등지문·경질문을 말한다. 원돈신해문의 주된 문제는 심성에 관한 문제이다. 즉 깨달음의 대상으로서 마음의 형태에 관한 문제이다. 원돈신해문은 돈오점수 체계에 비하여 돈오에 해당한다. 원돈신해란 중생들이 각자 갖추고 있는 근본보광명지를 골장 깨달아 발심의 근본을 삼는 것을 말한다. 정적등지문의 중심문제는 정혜문제이다. 즉 돈오 후의 점수로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자는 것이다. 경절문에서 경절이란 자구적인 의미는 ‘가로 질러 간다’는 뜻인데 선가의 말로는 ‘일체의 언어, 의리분별, 사량 등의 정식적 사고활동을 초월하여 심지의 본체에 직접 계합한다’는 뜻이다. 경절문의 의미는 사량분별을 단박 끊어내고 심지의 본체에 들어가는 수행의 한 방법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사단칠정론

사단칠정론의 핵심은 사단과 칠정이라는 정, 특히 사단을 이기론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성리학은 자연과 인간의 마음 등 모든 문제를 ‘리’와 ‘기’라는 용어로 해석함으로써 세계를 통일적으로 인식하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주자는 마음의 본체인 ‘성’을 이기론으로 설명하며 ‘성즉리’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학설을 정립하였으나, ‘정’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조선의 학자들이 마음의 실제적인 작용인 ‘정’을 주제로 설정한 것은 철학적 논의가 보다 현실화되고 구체화되었다는 징표이다.

사단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하여 제시한 것이다. 맹자는 백성에게 불인인지정(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지 않는 정치)을 시행하고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정치의 가능 근거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래부터 갖고 태어난 불인인지심(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도덕적 마음에서 찾았다. 그리고 인간이 도덕적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불인인지심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내용이 바로 사단이다. 인간은 사지를 갖고 있듯이 사단을 갖고 태어난다. 이 사단은 인의예지라는 본성이 발현된 정감이다.

측은지심은 타자의 고통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인이 나타난 것이다. 수오지심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으로 의가 나타난 것이다. 사양지심은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가 나타난 것이다. 시비지심은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으로 지가 나타난 것이다. 이 네 가지의 도덕적으로 선한 정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인의예지라는 도덕성을 확인할 수 있고 성선설의 타당성을 논증할 수 있다.

치정은 예기, 예운편에 나오는 기쁨, 분노, 사랑, 두려움, 슬픔, 싫어함, 욕구 등 인간의 일반적인 정감 일곱 가지를 말한다. 이 정감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다.

퇴계의 사단칠정론

1) 사단칠정에 관한 논의 과정

사단과 칠정은 본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은 권근(1352~1409)의 입학도설에서 시작된다. 입학도설 가운데 ‘천인심성합일지도’를 보면, 마음에 리와 기 두 개의 원천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리의 원천은 성으로 인의예지신인데, 여기에 나오는 정이 사단이다. 그리고 기의 원천은 칠정과 같은 라인에 설정되어 있다. 권근은 칠정이 드러난 것 중에는 간혹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성의 발로라고 하여 사단과 똑같이 정 속에 배열할 수 없다고 함 칠정도 성의 발현체이지만 악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순선한 사단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단과 칠정을 기와 리로 설명하여 논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정지운의 ‘천명도해’이다. 청명도해는 본래 그가 동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성리학의 기본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이다. 제작 연대는 1542경으로 추정된다. 그 후 퇴계가 세간에 유포되던 ‘천명도해’를 보고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여 추만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여 수정본을 확정하였다. 이때가 퇴계 나이 52세였다. 그리고 1559년 고봉 기대승(1527~1572)이 수정본 천명도해의 내용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는데, 이것이 한국철학사의 획기적인 사건인 ‘퇴고사단칠정논변’의 시작이었다.

정지운은 ‘사단에서 리가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고 주장하였는데, 퇴계는 이 문장이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사단은 리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라고 수정하였다.

1559년 퇴계는 고봉의 비판을 받고 ‘사단의 발동은 순수한 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은 기를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고 개정하였다.

2) 사단칠정에 대한 이기론적 해석

고봉이 주장한 내용의 핵심은 사단과 칠정이 하나의 정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두 개의 정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율곡의 사단칠정론

1) 이기호발설의 부정과 이기지묘

퇴계 사칠론의 핵심은 ‘이기호발설’이다. 율곡이 호발설을 부정한 것은 퇴계가 ‘이원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리와 기는 두 개의 존재가 아니며 사람의 마음에는 두 개의 근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율곡의 주장이다.

2) 사단과 칠정의 관계

율곡은 퇴계의 사칠론을 “이기가 두 개의 존재로 되며 마음에 두 개의 근본이 있게 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이이승지’이며 이것은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자연의 변화도 ‘기발이이승지’로써 이발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은 두 개의 정일 수가 없다. 정은 칠정뿐으로 사단은 그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선한 정만을 척출해 낸 것으로 보는 입장이 율곡 칠정론의 핵심이다.

퇴계가 사단과 칠정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정감으로 규정하였다고 한다면 율곡은 이 두 가지 정을 가치론적 차원에서의 구분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로 통합한 점에 그 특징이 있는 것이다.

3) 인심도심설

율곡도 인신과 도심은 사단과 칠정이 하나의 정인 것과는 달리 서로 대립적인 두 개의 마음임을 인정한다. 도심은 천리일 뿐이고 인심에는 천리와 인욕이 동시에 있다. 예를 들면, 마땅히 먹어야 할 경우에 먹는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경우에 먹거나 또는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과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욕으로 흐르기 쉬운 인심을 도심에 의하여 절제한다면 인심이 또한 도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녹문 임정주와 노사 기정진의 이일분수설

이일분수설은 자연세계의 질서와 인간사회의 마땅한 질서를 리를 중심으로 통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정주학의 이론체계이다.

녹문과 녹사는 인물성동이논쟁을 거치면서 이일과 분수를 지나치게 분석하여, 이기를 두 가지 존재로만 치우쳐 보는 현실이 나타났다고 보았으며 이와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서 모두가 기호학파의 태두인 율곡의 학설을 지목하였다. 녹문은 이통기국설에 대하여, 노사는 ‘지가이’ ‘비유사지’의 논리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리고 녹문과 노사는 이의 해결 방안으로서 이일분수설의 재정립을 시도하였다. 녹문은 이일분수설의 재정립과정에서 기상에서 리로 접근해 들어가는 ‘기상언지의 방법론’을 구사하였고 노사는 리로부터 기로 접근해 들어가는 ‘이상언지의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또한 인물성동이론의 이일과 분수의 단절 현상을 비판하는 동안 그들 나름대로의 핵심적인 논리체계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녹문은 ‘이기동실론’을 언급하였고 노사는 ‘이분상함론’을 주장하였다.

한주학파와 간재학파의 심설논쟁

심설논쟁은 명덕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남학파의 한주 이진상이 명덕심은 리라고 주장한 반면에 정재 유치명은 명덕심은 기라라고 주장하였다. 전자는 대포리에 살았기 때문에 포학, 후자는 대평리에 살았기 때문에 평학이라고 하여 그들의 논쟁을 평포논쟁이라고 칭하였다.

한주 이진상의 율곡학파 비판과 심즉리설의 정리

1) 율곡학파의 심즉기설에 대한 비판

한주 이진상은 자신의 심즉리설이 가장 선하고 율곡학파의 심즉기설에 대하여 가장 불선하다고 비판하였다. 더욱이 심즉기설을 따르는 학자들이 많은 것을 우려한 것을 보면 율곡학파의 득세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심즉기설이란 율곡의 심시기에서 비롯된 설로서 마음을 기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율곡을 직접적으로 가리켜 이단이라고 비판하지 않았으나 한원진의 심즉기는 율곡의 심시기에서 나왔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간접적으로 이단시하여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심즉기를 비판하면서 심즉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마음이 몸을 주재하고 그것은 리가 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심즉기라고 한다면 기가 몸을 주재하면서 순선한 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악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자 주재한다면 리는 사물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반박한 것이다.

2) 심즉리설의 정립

한주는 퇴계의 영향으로 인하여 리를 능동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리에 대하여 동정의 주체이고 기란 그것을 돕는 도구라고 하는 이상정의 이주기자를 수용하여 자신의 설로 삼았다.

간재 전우의 한주비판과 성사심제설의 정립

1) 한주 이진상 심설에 대한 비판

한주가 심즉리를 주장하면서 율곡학파의 심즉기를 비판하자 간재는 율곡의 심시기, 성즉리에 입각하여 그를 반박했다.

2) 성사심제설의 정립

간재는 성사심제설을 스스로 독창한 것으로서 육경의 종지라고 자부하였다. 물론 그것은 율곡의 심시기, 성즉리를 근거로 나온 오희상의 섬위심재의 영향을 받아 정립한 설이다. 그는 리가 기를 주재한다고 여겼으나 리는 무위이기 때문에 무위로서 주재하게 된다. 또 성즉리 심즉기이기 때문에 성은 무위로서 마음을 주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위로서 주재가 가능한 것인가가 문제이다. 마음은 몸을 주재하는데 성에 근거하여 주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가 기를 타고 몸을 주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은 무위로서 마음을 주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