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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논쟁 형성과 전개(문석윤, 동과서)

기독항해자 2012. 6. 26. 09:59

호락논쟁 형성과 전개(문석윤, 동과서), 2012년 6월에 읽음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형성과 전개를 연구한 책. 황윤석의 대체적인 정리를 기준으로 하여 호학과 낙학을 역사적 실재로 가정하고, 그 각 학파 인물들의 문헌들을 살펴보면서 실체를 확인하고자 했다. 호락논쟁은 호학과 낙학의 정립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또 반대로 호학과 낙학 자체가 호락논쟁을 통해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한 호락논쟁의 쟁점은 무엇이고, 그것들은 서로 어떻게 얽혀 있으며, 어떤 이론적 의의가 있는지 알아본다.

제1장 호락논쟁의 배경

I. 사회정치사적 좌표

1. 유교 사회 재건과 호락논쟁

유교적 이념에 투철한 유교 국가를 구축하려던 사대부들의 시도는 조선 초기와 중기에 걸쳐 여러 차례의 사화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실패하여 갔다. 사회기를 거치면서 유교 사대부들은 정치적 실천에 앞서 이념적 차원에서 유교에 대한 이해와 반성을 심화시켜 갔으며 퇴계와 율곡 시기에 이르러 어느 정도 보편적 수준에 이르렀다. 바로 그러한 와중에 부딪치게 된 두 차례의 외침은 유교 사회의 뿌리를 흔들 만한 위기였지만 그것은 또한 양반 사대부들에게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국가 재건의 상황은 위기이며 동시에 기회였다. 전란을 극복하고 유교 이념에 확고히 기초한 유교 공동체의 성격을 재건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에 있어 주체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당대 양반 사대부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이었고 그들은 그러한 역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호락논쟁이 전개된 17·8세기는 조선 사회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본격적인 유교 사회로 변모해 간 시대였다.

2. 사대부적 자아의 정립과 호락논쟁

유교사회의 재건에의 요청은 한편으로는 지배의 정점으로서의 왕, 피지배자로서의 평민과 구별되는 사대부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금 명료히 하는 것, 곧 ‘사대부적 자아’ 정립에의 요청이기도 하였다. 당시 양반 사대부들의 과제는 곧 전래의 왕권 및 당시 날로 성장하고 있던 중인 및 평민 세력과 관련하야 지배의 주체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정립해 내는 데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사실 성리학 이론은 그러한 지배에의 참여자로서의 문인 사대부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이다.

3. 경향의 분기와 호락논쟁

호락논쟁의 배경을 이루는 사회적 변동은 서울과 향촌의 분기, 이른바 경향의 분기이다. 호학의 호가 충청도 지역을, 낙학의 락이 서울 지역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는 학파의 명칭상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II. 철학사적 좌표

1. 17·8세기 조선 성리학: 심성학과 박물학의 시대

성리학은 리와 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연세계를 이해하고 심·성·정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며 그 둘을 관련지어 하나의 통합된 이론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세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그 속에서 인간을 이해한다고 하는 포과적 조화의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조선의 성리학 이해는 퇴계에 이르러 완벽한 이해와 자기 소화의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퇴게를 중심으로 한 16세기 조선 성리학이 본체 혹은 리를 그 자체로 규명해내는 데 집중했다면, 17·8세기 그들의 학문적 과제는 그 리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주체이자 리의 내면적 처소로서의 심과 리의 존재론적 처소이자 리에 대한 인식을 위해 현실적으로 우리가 잡아들어갈 수밖에 없는 물, 더 나아가 심과 물의 구성요소, 혹은 그 둘을 규정하는 존재로서의 기에로 관심을 옮겨 그를 적절하게 해명해내는 데 있었다. 그것은 외견상 대립하는 것을 보이는 심학적 관심과 함께 박물학적 관심의 공존을 가능케 해 주는 배경이 된다.

2. 화담과 퇴계의 비판적 종합으로서의 율곡학과 호락논쟁

율곡이 제시한 핵심적인 두 명제를 이통기국설과 기발리승일도설이다. 이통기국설이 화담 서경덕의 기일원론에 대립한 율곡 자신의 명제라고 한다면, 기발리승일도설은 퇴계에 대립하여 제시한 명제이다. 또 한편으로 이통기국설이 화담의 기일원론에 대해 토계의 이기론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기발리승일도설은 퇴계의 리학에 대해 화담 서경덕의 기학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율곡의 이통기국설과 기발리승이도설은 퇴계를 통해 화담을 극복하고, 화담을 통해서 퇴계를 극복하면서, 또한 그들 각각을 계승한 고심에 찬 종합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III. 기본개념들

1. 성리학에서 본체에 대한 인식의 문제

성리학은 자연과 인간, 사회와 개인을 하나로 묶는 포괄적 조화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개체를 넘어서는 전체 혹은 근원적 동일성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서 가능해진다. 개체를 넘어서는 전체, 본체 혹은 근원적 동일성의 관점이 단지 미분의 실체적 사유에의 매몰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모종의 반성 작업을 거친 정신적 노고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며, 따라서 이 경우 도덕적 실천은 진리 인식과 별개의 작업이 아니다.

2. 리일분수의 의미: 본체와 현실세계와의 관계

성리학에서 그러한 전체-본체를 표상하는 개념은 리이다. 경험 세계를 다양하고 편차가 있으면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우연적이지마 리는 그 개별성을 관통하는 근원적 통일성이요 합리성 혹은 필연성이다. 그런데 리가 그러한 개별성을 관통하는 근원적 동일성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동시에 경험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리를 통해 현실세계는 남김없이 질서화되며, 그 질서들은 단일한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것을 표방하는 명제가 곧 리일분수이다. 리일분수의 관점에서는 현실세계는 다양하지만 합리성과 필연성을 깨뜨리지 않고 근원적 동일성으로서의 리일에 통합되어 있는 것으로 가상된다. 현실세계 속에서 분화된 리가 분수 곧 분수리이다. 리일이 리의 본래적 단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분수는 리의 현실적 다양성을 의미한다. 리일과 분수리 사이에는 체용의 관계로 통일된다. 즉 분수리란 리일 곧 본체-리가 현실 세계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다양한 모습이지만 리일 자신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3. 율곡의 리통기국

본체의 통일성과 현실세계의 이중적 다양성, 곧 분수적 다양성과 분열적 다양성에 대해 잘 표현된 명제가 율곡의 리통기국이다.

4. 본성과 본체: 본성에 이르는 세가지 경로, 태극, 사단, 미발

본성은 원래 개체에 내재한 자연적 욕구를 의미한다. 즉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욕망, 능력 곧 본능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체의 생존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는 곧 본성이 개인의 생명과 깊이 관련 있으며, 본성에 대한 관심이 외부의 국가적 사회적 권력에 대한 일정한 반성과 개인의 자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5. 마음에 대하여: 장과 주체

제2장 쟁점들의 형성 제1기

I. 김창협의 본성에 대한 초기의 두 견해

1. 본성과 자연 상태: 성악논변

농암은 성악논변에서 인간 본성의 선함을 역설하고, 인간 본성의 악함을 주장하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과 순자를 비판한다. 여기 성악논변에서 농암은 인간의 본성을 리에 기원한 자연 상태와 관련시킴으로써 인간 본성의 선함과 그에 기초한 질서의 내적 필연성을 역설하였다.

2. 본성과 천명: 上尤齋中庸疑義問目(상우재중용의의문목,1678년)

II. 본체논변

1. 낙학의 본체론: 김창흡과 조성기의 태극논변(1685년)

2. 호학의 본체론: 권상유와 박세채의 태극논변(1678년)과 권상하의 태극설(1679년)

3. 호학과 낙학 본체론의 교차: 충막무짐 문제(1709년)

III. 지각논변의 형성

1. 낙학의 지각론

가) 김창협과 閔以升 (민이승)의 지각논변(1697년)

나) 김창흡의 논지자설(1704년경)

마음에는 미발과 이발의 두 가지 양태가 있는데, 그 각각에서 마음은 곧 본성이며 정서이다. 하지만 마음은 또한 지각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본성과 정서와는 또한 각기 구별된다. 지각으로서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형이하의 것으로 형이상의 본성과 구분된다. 곧 도와 기의 구분이다. 또한 그 마음은 현실화된 정서와도 구분된다. 둘 다 형이하의 것이기에 둘 사이는 겹치기도 한다. 즉 현실화된 정서는 곧 현실화된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그대로 현실화된 정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2. 호학의 지각론

가) 권상하와 그 문인들 사이의 기각논변

호학의 태극론과 충막무짐론이 낙학의 본체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형성된 것이라면, 호학의 지각론은 농암 일해의 낙학측의 지각론을 익히 이해한 가운데 그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이간과 윤혼 사이의 지각논변

이간, “마음은 총괄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 체는 본성이며 그 용은 정서이다. 이것은 곧 리와 기를 합해서 말한 것이다. 그 뒤섞여 틈이 없는 가운데서 또 분별해서 말하자면, 마음은 곧 기이며, 허령이 그 체이고, 지각이 그 용이다. 본성은 이리며 사성이 그 체이고 사단이 그 용이다.”

농암 김창협을 필두로 한 낙학의 종지가 곧 그 마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수암 권상하를 필두로 한 호학은 마음을 본성과 정서로 환원시키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이란 정의 상태에서 본성으로 있다가, 외부의 자극이 오면 그에 반응하여 정서로 되는 일원론적인 흐름이라는 것이다.

다) 한원진의 김창협 지각설 비판

“농암 선생이 지각이 지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지각은 한 마음의 덕에 오로지한 것인 반면, 지는 다섯 본성 가운데 하니다. 한 마음의 덕 전체를 다섯 본성의 하나에 치우치게 일치시킬 수는 없다는 것. 둘째 지각은 기의 영활함인 반면, 지는 본성의 정이다. 기의 영활함을 본성의 용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 셋째 지각은 리를 갖추고서 정서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의 용이라고 한다면 지의 용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IV. 미발론변의 형성

미발에 대한 이해 문제는 이미 퇴계와 율곡 당시에 문제시되었고 17세기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각각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면서 18세기로 이어진다. 특별히 율곡학파 내에서 이 문제는 인물성 동이 문제와 더불어 호학과 낙학이 분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 낙학의 미발론: 김창협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미발논변

농암은 민이승과의 지각논변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해 좀더 심화된 접근을 할 수 잇었다. 인간 본성은 우리의 일반적 자연 상태 즉 현실화된 정서(사단칠정)에 대해 체용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 마음의 활동에 대해서는 보기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었다.

미발은 아직 외부사물과 접촉하지 않아 사려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마음이다. 곧 조금의 마음의 움직임도 없을 때이다.

2. 호학 미발론의 배경

가) 김창협의 사단칠정론

미발이 아직 활동하기 이전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사단칠정이란 활동하는 마음, 곧 현실화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퇴계와 고봉에 의해 본격화된 사단칠정론이란 먼저 현실화된 정서를 사단과 칠정이라는 두 가지로 유형화시키고 그 두 가지가 세계를 구성하는 두 원리인 리와 기를 통해서 각각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데서 생긴 것이다.

나) 김창협의 박세당 사변론 비판

서계 박세당은 尹拯(윤증)과 함께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격화된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다. 박세당이 남긴 사변록은 그 내용의 파격성, 곧 반주자적 성격과 더불어 그러한 사정과 관련해서 노론 학자들의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3. 낙학 미발론의 전개: 김창협과 이희조의 미발지각논변

농암은 지각을 마음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마음의 비말에는 지각의 체가 있으며, 기발의 지각은 그 체의 용이다. 따라서 지각은 마음의 동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현실화된 정서와는 구별된다. 움직이는 것이 현실화된 정서이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각이다. 정서는 결과이고 지각은 본성이 현실화하는 매체이다. 이 매체는 미발에서 이발에 걸쳐 있으므로 미발에서의 현실인 성이 이발의 정으로 나아갈 때 주밀한 매체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게 된다. 이희조는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을 지각으로 보게 되면 정서 외에 또 이 정서를 움직이는 지각을 가지는 격이 된다고 하여 그에 반대하였다.

4. 호학의 미발론: 권상하의 미발론변

1708년에 이르러 미발문제는 호중의 학자들에게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 혹은 심기, 형기와 본성 사이의 관계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낙학에서의 미발문제가 마음에 중심을 두고 마음과 본체 사이의 관계를 논한 것이라면 호학에서의 미발문제는 본성에 중심을 두고 본체와 본성, 본성과 마음의 관계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3장 낙학과 호학의 성립 제2기

I. 낙학의 성립: 김창흡 일파의 제논변

1. 이현익과 어유봉의 인물성동이논변과 김창흡의 평론(1715년경)

2. 이현익과 어유본의 미발기질선악논변(1713년경)

3. 이현익과 박필주의 미발논변과 김창흡의 평론(1714년경)

II. 호학의 성립: 한원진과 이간 사이의 논변

1. 이간과 한원진의 미발논변(1709년)

가) 기불용사의 문제

나) 기순선의 문제

다) 심과 기질의 분리, 심의 허령문제

라) 논변의 관점과 의의

기에서 그 형기적 측면이 보다 일차적인 것으로 생각한 남당은 형기적 측면을 배제하는 외암의 본성이해를 공허하다고 비판한다. 즉 기의 심기적 측면, 즉 허령한 측면을 일차적인 것이라 생각한 외암을 결국 본성보다는 대신 마음의 운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외암의 이러한 입장은 물론 본체의 운동과 그에 대한 직접적 접근을 취하는 낙학의 종지에 연결되는 것이다.

외암은 남당의 입장을 본체 리를 공허하게 논한 것이라 비난한다. 마음의 순수성, 그 talfl적 현실을 떠나 리를 논하는 것은 곧 공허하게 리를 논하는 것이다. 마음과 본성, 리와 기는 분리되지 않고 합해질 때 실제적인 내용을 갖추게 된다. 체험이 결여된, 개체적 실천이 결여된 규범-실재의 순수성이란 공허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생명력이 결여되기 쉬운 것이다.

2. 이간과 한원진의 인물성동이론변

1) 논변의 기본적 관점

인성과 물성의 동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동물도 오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간은 동물도 오상을 온전히 다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고, 한원진은 동물은 오상을 다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오상이란 곧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덕목이므로,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동물에게 그러한 오상이 갖추어져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로 보인다.

2) 논변의 전개

이간은 ‘일원=본연, 이체=기질’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원진은 오상의 존재론적 성격을 본연이면서 이체인 것으로, 즉 본체와 현실세계 사이의 중간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제4장 호락논쟁의 전개: 제3기

1. 호락논쟁의 시기 구분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과 논변들이 형성된 것을 호락논쟁 제1기로, 호학과 낙학의 학파적 성립기를 호락논쟁 제2기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논쟁 제1기의 대표적인 인물은 낙학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농암 김창협(1651~1708)과 호학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수암 권상하(1641~1721)이다.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농암이 세상을 떠난 1708년까지가 제1기에 해당한다. 농암 사후 낙학은 그의 동생 삼연 김창흡(1653~1722)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편 호학측에서는 수암 권상하가 여전히 생존해 있었으나, 호학의 성격이 명료해지는 것은 남당 한원진의 열정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논쟁 제2기 호학의 중심인물은 남당 한원진(1682~1751)과 그의 대립자인 외암 이간(1677~1727)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는 각기 상대방을 의식하면서 본격적으로 학파적 특색을 형성해 간 시기이다. 쟁점들이 보다 명료하게 정리되었으며 핵심적인 논점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호락논쟁이 좁은 의미에서 호학과 낙학의 직접적 대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호락논쟁은 제3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삼연이 세상을 뜬 1722년을 전후해서 남당이 작고한 1751년 무렵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2. 박필주와 윤봉구의 논변과 이재의 평론

3. 위 논변에 대한 한원진의 평론(174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