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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와 천재가 만든 미술 이야기(김영재, 다른 세상)

기독항해자 2012. 6. 13. 17:00

바보와 천재가 만든 미술 이야기(김영재, 다른 세상), 2012년 6월에 읽음

1. 자연을 향해 휘두르다

동굴 시대

세계 미술사는 제4기 충적세 후빙기에서 시작된다. 니그로이드나 몽골로이드가 아니라 코카소이드의 동굴벽화가 그 시발이다. 백인계의 서양사회가 인류의 중심이 된 것은 그리스의 동방제패와 로마의 세계제패로 부와 세력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난 후손이 선조를 영광스럽게 한다.

동굴 미술을 움직인 것은 자연지향성이라 할 수 있다. 동굴벽화에서 인간은 인간을 둘러싼 자연에 그림을 그렸다. 자연이 화면이고 자연이 안료였다. 화면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었다.

2. 인간을 베낀 신

이집트미술

문명은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땅과 적당한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 꽃핀다. 온대지방의 비옥한 땅을 끼고 있으면서 주위에 사막이 있어 외부세계와 차단된 곳에서 문명이 일어났다.

이집트인은 신성함과 영원성을 그리고자 했다. 그것이 메시지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의 남겨진 그림들 중 몇몇은 오늘날의 원급법이나 초상화 기법을 연상시키는 자연스런 도구가 되었다.

그리스

동굴벽화 이후 인류는 3천 5백 년 동안 파피루스와 종이, 돌이나 나무 그리고 캔버스 등에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등을 새기고 기록했다. 그것이 현세인류의 문화사였다. 그 역사를 관통하여 대물림하더라도 자리바꿈을 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라는 소재와 주제였다.

그리스의 이상이 유럽문명의 나침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상과 이론이 변증법적인 사회와 문화 및 제도라는 거름장치를 거쳤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공동의 언어와 신화, 아폴론의 신탁과 올림픽이라는 공통 요소를 가졌다.

로마

그레코로만이란 로마 문화의 원천이 그리스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로마에 의해서 그리스 문화가 후세에 유전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고대 로마인에게 고전 그리스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텍스트였다. 고전 그리스에 대한 짝사랑으로 로마인은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까지 그리스를 모방했다. 뛰어난 복제기술로 그리스 예술을 재현했다. 그래서 로마는 그리스에 비하여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3. 유일신과 신의지

중세

중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즉위한 590년부터 1517년 루터의 기독교개혁 이전까지를 말한다. 중세는 교황권과 국왕권의 공존과 대립에서 시작된다. 좁은 의미에서는 신성로마제국과 신성로마교회의 우위다툼이다.

1390년 첸니로 첸니니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하는 아티산으로 장인이라는 뜻이다. 가난이나 가정형편 혹은 세속적 이익을 위해 그림을 선택한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아티스트로 예술가라 번역된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지성적인 사람을 말한다.

중세에는 예술가에게 보다 인간을 수고스럽게 하는 질료와 안료가 주어졌다. 13세기 들어 길드가 조직되고 기술적인 지식이 보급될 때까지 안료를 만드는 비결은 극비였다. 하늘이 내려준 만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비밀이었다.

로마네스크

11세기에 로마네스크라 불리는 양식이 나타난다. 로마 건축양식인 아치를 모방했다는 뜻이다. 9세기에 샤를마뉴 대제의 제국이 붕괴된 뒤 지방분권적인 문화활동의 결과였다. 이는 전유럽에 걸친 미술운동이었다. 로마네스크는 고딕으로 연결된다. 회화에 있어서 로마네스크의 의의는 그 소재나 표현에서보다 건성유의 개발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4. 목이 비뚤어져도 르네상스는 온다.

초기 르네상스

르네상스의 이상은 기독교라는 인의적인 수단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자연과 인간을 본다는 것이다. 이는 신흥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신의지에 구속되지 않는 만능의 천재가 나타난다. 르네상스가 발견한 것은 인간의 존재성이다. 존재의 위에 인간을 인간답게 표현하려는 인간적인 열정이었따.

르네상스

르네상스의 화가는 자연과의 사이에 화면을 세웠다. 화면은 인간의 눈높이 맞춰졌다. 그리고는 자연을 복사했다. 사람들은 자연을 분리시키기 위해 벽을 쌓고, 다시 자연을 끌어들이기 위해 창을 낸다. 르네상스의 화가가 세운 화면은 창문이 된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그림을 창문그림이라 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천재의 개념을 명확하게 보여준 예술가이다.

발견과 발명

르네상스의 3대 발명이 있다. 화약, 인쇄술, 나침반. 그러나 모두 동양인이 발명한 것을 개량한 것이다. 특허로 본다면 발명이라기보다는 실용신안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발명이라 한다. 화약은 중세의 상징이던 기사들을 몰락시켰다.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서 시작하여 기독교개혁의 동력이 된다. 나침반은 지리상 발견의 동력이 된다.

미술에서도 3대 발명이 있다. 정확하게 말해 발명이라기보다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르세상스 미술의 중요한 업적 중에 명암법, 원근법, 투시법 등의 연구가 있다.

명암법에는 키아로수쿠로와 스푸마토가 있다. 키아로스쿠로는 이탈리아 말로 명압을 뜻한다. 입체표현을 위한 명암법으로, 밝은 곳은 밝게, 어두운 곳은 어둡게 그린다는 뜻이다. 스푸마토는 이탈리아 말로 연기라는 말이다. 공중에서 사라지는 연기처럼 그린다는 뜻으로 쓴다. 색깔 사이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몽롱한 표현을 위한 색채표현법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영향력 있는 베니스화파 최초의 색채화가라 할 만하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라파엘로와 함께 4대가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까지 화가들은 거칠고 자극적인 색깔로 그림을 그렸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 색깔을 넣는 것 같았다. 화가들은 뾰족한 붓으로 세부묘사를 즐겼다. 머리칼과 눈썹을 일일이 세어서 그릴 뿐 아니라 진주목거리의 반사광까지도 그려넣었다. 티치아노는 그러한 관행을 깨트린다. 비비기와 광내기는 중간톤과 하이라이트를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 비비기란 마른 그림 위에 물감을 듬뿍 묻힌 붓으로 가볍게 바른 뒤 마른 붓으로 비비는 기법이다. 광내기란 가장 밝은 곳에 붓이나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비벼준다.

5. 제도와 인간

아카데미

최초의 아카데미는 1648년에 설립된 회화·조각의 왕립 아카데미였다. 이어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가 뒤를 잇는다. 아카데미에서는 인체를 이상화한다. 그 전범이 되는 것이 고전 고대였다.

6. 인간의 눈으로 보다

20세기

20세기는 엄청난 격별의 물결이 상식을 거부하면서 밀려들었다. 그 물결의 이름은 1,2차 세계대전, 카메라의 전횡, 그리고 물질적 비결 정론이다.

광기

20세기는 한마디로 광기의 세기였다. 그 광란의 20세기 미술이 시작된 배경에 기계가 있었다. 처음으로 20세기 미술의 자긍심을 건드리는 것은 카메라였다. 그 다음이 비디어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컴퓨터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시각을 통하여 인지되고 저장되어 출력된다는 것이다.

20세기 미술이라는 배는 파리에 콜레, 콜라주, 레디메이드, 발견된 오브제 등 희한한 발상에 이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출항했다. 파피에 콜레는 화면에 종이 붙이기이다. 콜라주는 종이 대신 물건들을 붙인다. 레디메이드는 대량생산된 상품이다. 발견된 오브제는 미술가가 발견했기 때문에 미술품이 된 아무 물건이라도 좋다.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연대로 보아서는 19세기이다. 1850년에서 1870년까지 마네, 모네, 피사로, 드가,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 등이 활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성격은 시대를 초월한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상파를 20세기 미술운동의 견인차로 평가한다.

에두아르 마네

20세기 미술이 인상파의 승리에서 비롯한다면 그 전장은 낙선전이다. 1836년 마네는 <풀밭 위의 식사>를 살롱에 내놓았다가 낙선한다. 분개한 마네는 나폴레옹 3세의 인가를 받아 낙선한 작품들을 살롱에서 전시하게 된다. 그것이 독립선언이었다. 이후 화가들은 살롱을 통하지 않고도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화상들은 화가들에게 직접 작품 교섭을 했고, 미술관 역시 살롱을 거치지 않고도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된다.

클로드 모네

모네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중에서 인상파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화가로 평가된다. 그 중요성은 194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후광 아래 더욱 강조되었다. 인상주의란 말은 평론가 루이 르루아가 모네의 <해뜨는 인상>을 조롱한 말에서 비롯한다. 팔레트의 물감을 아무렇게나 떡칠했다는 비난도 잇따랐다. 서양의 그레코로만 흐름 속에서 모네를 비롯한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쇠라, 시슬레 등의 화가들은 그렇게 모멸스런 칭호를 받으며 20세기를 열어젖혔다.

후기인상주의

네 사람의 위대한 화가들이 있었다. 세잔, 고흐, 고갱, 쇠라이다. 이들에 의해 인상주의의 자연적인 목표에 도달한다. 세잔은 인상주의를 어떤 굳건하고 기념비적이며 심오한 것으로 바꾸었다. 입체파의 1907년에서 1914년 혁명의 배경에 세잔이 있다. 또 인상주의는 고흐에게 표현적 스타일을 개발하게 했다. 그것은 1905년 야수파에게 영향을 준다. 고갱은 색채의 상징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래서 상징주의자의 선조가 된다. 쇠라는 들라크루아와 슈브뢸 등의 색채학 연구를 통해 점묘기법을 완성한다.

폴 세잔

사람들은 세잔의 작품 앞에서 머리를 싸맨다. 20세기 미술사의 첫장을 찬란하게 장식하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술학교 입시에도 낙방했던 세잔이다. 그가 남긴 그름의 의의는 아름다움이나 작품성에 있지 않다. 모리스 드니가 세잔을 찬양한 것은 회화의 자율성에 대한 경의였다. 세잔은 비유하자면 20세기 미술의 떡잎이었다. 르네상스의 멍에를 벗어던진 선구자이지만 거목은 아니었다. 굳은 땅을 헤집고 나와 새 잎이 자랄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것이 떡잎의 의미이다.

조르주 쇠라

쇠라는 폴 시냐크와 함께 신인상파 혹은 분할파로 불린다. 이들은 인상주의적 자연주의에 깃든 낭만적 요소에 대항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캠퍼서 위에 따로 점들을 쩍어 시지각상에서 혼색한다는 과학적인 테크닉을 썼기 때문에 점묘파라고도 한다.

야수주의

포비슴, 즉 야수주의는 20세기의 화가가 대중에서 충격을 준 첫 번째 중대사건이었다. 야수란 길들지 않은 들짐승을 말한다. 야수파는 1905년 살롱 도톤의 전시에 출품되었던 마티스,블라맹크, 루오 등의 작품에 대한 조롱의 표현이다.

앙리 마티스

마티스는 포비슴, 즉 야수파의 선봉대장이었다. 야수파란 표현주의의 전위부대라 할 만하다. 마티스의 화면은 단조로운 색면과 심한 굴곡의 윤곽선이 특징적이다. 고갱의 영향을 받았던 원시적인 형태, 자연 그대로의 인간 모습 등으로 묘사된다. 고갱의 영향이란 클루아조네를 말한다. 색면에 까만 윤곽선을 그리는 기법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칸딘스키는 추상화를 실증적으로 체계화한 화가로 평가된다. 인간사회에 공통적으로 깔린 정서적 바탕을 추상화했다는 것이다.

피에크 몬드리안

몬드리안은 칸딘스키와 대립되는 개념처럼 기술된다.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에 대하여 차가운 추상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또 접미어처럼 기술되기도 한다. 칸딘스키가 정신을 철학적으로 합리화 했을 때 몬드리안은 그 철학이 어떻게 생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파블로 피카소

서양미술사의 흐름은 셋으로 대별될 수 있다. 답습과 승계, 개혁과 파괴, 변화와 발전이다. 아름다운 그림은 답습과 승계의 흐름이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는 최고점수를 받았다. 개혁과 파괴는 위험부담이 큰 역류이다. 때로 불안한 고득점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중이 줄어들다가 사라진다. 결국 최고점은 변화와 발전에 주어진다. 변화란 그레코로만의 흐름, 즉 인간 중심의 합리주의 사상을 뼈대로 한다. 그 위에 표현양식을 바꾼다. 발전이란 그 흐름의 물길을 확장하는 것이다.

피카소는 20세기 미술의 대명사이다. 가장 큰 공적은 콜라주와 입체주의에 있다. 콜라주는 화면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에 풀로 붙인다는 뜻이다. 입체주의는 대상을 기하적인 단위로 분해한다. 아프리카 조각은 분해된 형체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도입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뒷면가지 하면 위에 같이 그리기도 한다. 콜라주와 입체주의는 사실상 변화와 발전의 흐름은 아니다. 콜라주는 붓으로 그리는 그림과 진흙을 붙여 만드는 조각의 경계를 파괴했다. 입체주의는 카메라의 평면시각과 고전적 미의 관념을 개혁했다. 그런데도 피카소의 방식은 변화와 발전으로 인식되었다.

마르크 샤갈

사람들은 샤갈의 그림에서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본다. 그것은 체험과 동경과 꿈과 환상이다. 현실세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치는 감동은 그렇게 온다. 현실이야 경제적이고 물질적이며 제도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저서인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시작된다. 1920,30년대 유럽이 초현실주의의 활동무대였고, 2차대전 후에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로 연결되었다. 사전에는 “연상작용을 제거하면서 순수하게 말이나 글을 표현하려믄 심적 오토마티슴”이라고 되어 있다. 초현실주의란 심리학, 문학, 미술의 총체적인 예술 운동이다. 로트레아몽과 아폴리네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비논리 시의 전통이 문학적 바탕이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잠재의식이 행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뒤샹의 영향을 받은 우연주의자들이 여기에 합세했다. 초현실주의는 카메라가 가지지 못한 내면의 눈을 주목했다. 그들은 상상력을 극대화한 꿈과 환상과 무의식을 무기로 선택했다. 달리의 꿈과 샤갈의 환상 그리고 미로의 무의식을 합하면 초현실주의 회화의 큰 줄기가 보인다.

호안 미로

오토마티슴은 초현실주의에게 중요한 기술방법이다. 에른스트, 마송, 미로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인상주의, 야수파, 형이상학파, 미래주의, 입체주의 등등 20세기 미술의 모든 유파를 거침없이 소화한다. 20세기 미술의 중요한 사조를 모두 품안에 안은 셈이다. 그뿐인가. 미로를 만나 초현실주의로 기울어진 달리는 추상, 입체, 다다의 영화를 만들었다. 달리는 편집광적 비판의 방법을 개발했다. 편집광이란 어떤 생각의 꼬투리를 잡았다 하면 마르고 닳도록 물고 늘어지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7. 물질문명의 사생아

팝 아트

팝 아트는 매스미디어의 재료와 대중문화와의 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광고 디자인, 사진, 텔레비전 등의 이미지와 대량생산된 산업제품 등이 대상이다.

정크아트는 로렌스 앨러웨이의 정크문화라는 말에서 왔다. 버려진 소비물자를 오브제로 구체화한 작품이다. 정크라는 말은 쓰레기라는 말이다. 펑크아트는 ‘집적’이라는 듯을 가진 아상블라주의 한 갈래이다. 원래 부랑배나 쓰레기 같은 인간, 허튼 소리의 뜻이었다. 미술에서는 일그러지고 뒤집혀진 인간을 통속적으로 조작한 환경에 놓는다.

8. 행위가 예술이 되다

해프닝

미술에서 행위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는 미술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미술이다. 미술행위는 형상화를 위한 행위와 공감대 형성의 행위를 합한 것이다. “화면이나 매체에 인간의 시각과 감정을 형상화하여 보는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적 활동”을 미술행위라 부른다. 행위미술 역시 형상화를 위한 행위와 공감대 형성의 행위를 합한 것이다. 미술행위와 다른 점은 신체가 화면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작가 자신의 행위가 매체가 된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행위미술의 1980년대 양상이다. 퍼포먼스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수행’이라는 말이다. 기계의 성능, 연기 등도 퍼포먼스이다. 퍼포먼스는 신체를 이용한 작품이나 자전적인 주제와 내용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반영한다.

바디 아트

바디 아트는 예술가의 신체를 통해서 그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깨닫게 하거나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신체는 이럴 때 표현의 매체가 된다.

9. 컴퓨터를 베개로 눌러버려?

테크놀로지, 테크노 아트

테크놀로지 아트에서 응용되고 있는 테크놀로지는 공업, 과학기술, 공예학, 응용과학 등에서 빌려온다. 예술과 관련 있는 부분만을 기술과 효과로 받아들인다. 기술 자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극한 기술, 광학이 그러한 예다.

비디오 아트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를 표현의 매체이자 도구로 활용하는 예술의 한 형태이다. 화상조작, 편집효과 등을 통하여 화면을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모니터로 송출한다.

10. 개념이라는 이름의 맹물

1970년대 이후 20년 이상 세계미술은 혼미를 거듭했다. 다시는 평면이나 미술관 미술, 혹은 이젤 회화의 형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듯했다. 신화와 전통의 바탕이 없는 민족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이기도 했다. 그리스와 로마, 그 두 가지를 미국미술은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창의적인 그리스가 될 수 없다면 모방을 통한 로마식의 기록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미국미술은 창의적이지도 못했고 보존적이지도 못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리히텐슈타인은 팝 아티스트로 분류한다. 그러나 소재가 팝일 따름이지 개념은 개념적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베낀다.

하이퍼 리얼리즘

하이퍼 리얼리즘은 1960년대 중반 말콤 몰리에 의해 시작되었다. 아크릴 컬러보다 명확하고 차가운 마무리를 위해 유화로 전향했다. 물감은 두껍게, 붓놀림은 빨리, 질감은 유연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팝 아트라는 방식을 도입하여 미국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지적한다. 그리하여 극도로 조직화된 사회에서 결국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비인간화 또는 비인격화의 예술을 주도한다.

미니멀 아트

극소화한 미술이라는 뜻이다. 일루전(illusion)의 극소화를 향한 최소한의 조형수단으로 제작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엄정한 기하적 형체를 기본으로 하는 경향이다. 노골적으로 팝 아트에 대한 반감을 표명했으며 엄격하고 비개성적이고 소극적인 화면구성을 지향한다. 회화와 조각의 구조적 접근을 통해 형체나 선 등을 극도로 단순화한다.

설치 미술

설치 미술은 인스털레이션(installation)을 번역한 말이다. 주로 미국의 미술잡지들이 전시된 작품의 구성을 보여주는 사진을 설명할 때 쓰던 말이다. 보통 한 번 전시가 끝나면 해체되는 구조물을 일컫는다.

환경미술

팝 아트는 매스미디어의 재료와 대중문화와의 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광고 디자인, 사진, 텔레비전 등의 이미지와 대량생산된 산업제품 등이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