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3:9-12
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제목: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③
④사람과 동역하시는 하나님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사람과 동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사람과 동역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귐 혹은 교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귀고 교제하며 협동하여 일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잘 반영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영생이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창세기 1장은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시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자유로운 인격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교제란 말은 자유로운 인격체들에게만 있는 일입니다.
이 말은 또한 하나님께 반역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되,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을 만드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이제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코드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바로 로봇입니다. 사람들은 차세대 컴퓨터를 생각합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컴퓨터입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이런 컴퓨터가 나오게 되면, 그들은 사람들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판단하고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코드대로, 입력된 대로 움직인다면, 그런 사람은 자유로운 인격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을 이처럼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은 가지고 놀려는 존재가 아니라 교제할 수 있는,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역의 가능성이 실제의 반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찾아 왔고, 고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하기 위해 잠시 멈추겠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를 끝장내시고, 다시 시작하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때도 역시 반역의 가능성을 갖은 사람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역시 반역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 시작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범죄할 수 있는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속의 영광이 창조의 영광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인류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자신 창작한 것을 보면서 만족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만족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창조의 6일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계를 보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속이 하나님께는 기쁨이 됨을 누가복음의 잃어버린 세 가지 비유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잃은 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양을 잃은 목자는 다른 양들을 안전한 목장에 들여보낸 후에 양을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것이 목자에게는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두 번째 이야기는 잃은 드라크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은 남편에게 수치되는 일이기 때문에, 잃은 드라크마를 끝까지 찾습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게 되면, 여인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잃어 버린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 됩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둘째는 집을 떠난 자신의 의지로 한 것입니다. 누가 그에게 집을 떠나도록 강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기로 결정하고 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는 돌아온 아들은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범죄한 인류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택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동역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8절에 나와 있는 대로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 한 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단의 손에서 해방하시고 천국으로 우리는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구속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사람과 동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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