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출애굽기묵상

출애굽기2:16-22 계획되지 않은 삶이 찾아올 때

기독항해자 2011. 3. 4. 12:14

본문: 출애굽기2:16-22

16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에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제목: 계획되지 않은 삶이 찾아올 때

1.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모세에게 그가 계획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은 삶이 찾아 왔습니다. 인생의 격랑은 우리에게 예상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은 삶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상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맞는 것이 막막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41살의 젊은 교수가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보란 듯이 이루어낸 중산층의 삶을 제지당한 절망감과 좌절이 밀려옵니다. 해고통보를 받은 날 밤, 집에 처분할 물건이 없는지 살핀 후, 넷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아내를 설득해 야밤에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야 겨우 그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알려줄 께 있어. 멋진 소식이야. 해고당했어!” 이 사람은 미국 콜게이트 대학 영문학과 교수였던 돈 슈나이더입니다. 그는 이 때의 경험을 절벽산책(사람과 책 刊)에 그려 놓았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명예퇴직을 당한 가장의 좌절과 고통, 분노 그리고 재기 과정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저자는 1년반의 실직 기간을 ‘절벽산책’에 비유합니다. 경력을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 얻는 목수 일을 처음 하게 된 곳. 별장 신축 공사장이 있던 까마득한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산책하는 ‘어깨처진’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실직을 한 후 그는 수십 곳의 대학에 교수 채용 지원서를 넣습니다. 그러나 계속 거절 통지서만 돌아오는 쓰라린 경험을 하면서 “결코 만족을 모른 채 항상 새로운 성공을 찾아 헤매게 만든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업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이라지만 “왜 하필 내가…”라는 푸념이 깊어지면서 그는 황폐해져 갑니다. 분노는 자신의 내면 뿐만 아니라 불특정한 타인을 향하게 마련입니이다. 난방비를 받으려는 수금원에게는 트집을 잡으며 신경질을 부립니다. 연로하고 병든 아버지에게 조차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고 생명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아이의 소변으로 검사를 받아 흡연 사실을 감추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또한 더욱 큰 고통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인생의 40대에 이런 위기를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모세처럼 슈나이더처럼 인생의 역풍에 고전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광풍이 연이어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매서운 역풍이 몰아칠 때 인간이 자기 방어의 기제로 제일 먼저 꺼내드는 화살이 의구심입니다. 그러나 의구심의 화살은 멀리 가지 못하고 금세 떨어져 버립니다. 두 번째 화살은 분노입니다. 분노를 쏟아 놓은 대상은 하나님 외에 누가 있겠는가? “제가 뭘 잘못했나요? 왜 제게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두 번째 화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세는 이런 생각을 안했을까요.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2.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특별한 일에 사용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세는 준비되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세상의 학문과 권력을 가지고 살길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에 열을 올립니다. 아이들의 능력과 적성은 생각하지 않고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몰아 부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동안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긍정적 사고라는 개념은 수많은 선전 문구 속에 침투하여 우리 의식 속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고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서 늦게 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40대가 되면, 그렇게 믿고 달려 온 세상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갑자기 일어난 격랑으로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똑 같은 세상으로 내몹니다.

바로 이것이 인본주의 철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본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인생이 하나님의 특별한 예정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