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출애굽기묵상

출애굽기1:15-22 산파 십브라와 부아

기독항해자 2011. 3. 4. 12:08

본문: 출애굽기1:15-22

15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하나님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제목: 산파 십브라와 부아

우리는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아름다운 신앙의 하모니를 보게 됩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세상의 왕이 주권자로 착각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그 무대의 주권자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이 역사의 무대에서 신앙인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이 역사의 무대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충실한 조연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믿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아닌, 적대적 입장에 서 있는 자로서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한 바로가 어떤 결국을 맞게 되는지를 출애굽기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모세의 탄생 배경속에 나타난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상황에서 당당한 신앙인의 자세를 잃지 않는 산파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당당한 신앙인의 모습은 타협이 아닌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족장들과 언약한 대로 그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약속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번성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자손의 번성은 애굽의 왕 바로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바로를 하나님과 대립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억제하고자 그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십브라와 부아는 세상의 왕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중에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1. 애굽의 왕이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억제하기 위한 모든 정책이 수포로 돌아가자,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애굽의 바로는 강제노동을 통한 임신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산을 돕는 산파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태어난 아이가 여자면 살리고, 남자아이면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뜻밖의 상황에 의해 좌절되게 됩니다.

그것은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애굽왕 바로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바로는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애굽의 모든 신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언제든지 사형을 명할 수 있는 초법적인 기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 자손의 남자 아이를 살려준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다시 말하면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이가 애굽의 바로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2. 애굽의 바로는 그의 특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이 멈추어지지 않자 히브리 산파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산파에게 남자아이가 살게 된 이유를 묻게 됩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애굽의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남자아이들이 살게 된 이유를 아주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십브라와 부아에게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그들이 출산을 돕기 위해서 가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의 임산부들은 아이를 낳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죽일 찬스를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바로에게 히브리 여인은 애굽의 여인보다 건장하여 아이를 쑥쑥 잘 낳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가 애굽의 바로에게 댄 이유가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히브리 여인들이 애굽의 여인들보다 건장했다는 말입니다. 만약 히브리 여인들이 애굽의 여인들보다 건장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둘러 댄 이유는 채택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운명은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도 히브리 여인들이 애굽의 여인들이 훨씬 건장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의 가정을 축복하여 왕성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바로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항상 최종 승리입니다. 과정에서는 어려움도 있고 고난도 있지만, 결국은 최종승리입니다.

결론-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4세기 동방의 명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이 사회악을 꾸짖고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를 나무라다가 위협을 당하여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까? 죽음인가? 아니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감추어져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인가? 아니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나의 소유를 잃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이 가지고 온 것은 없고 떠날 때도 가지고 갈 것은 없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 저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면 나는 예레미야처럼 될 것이고 굴에 던져 넣으면 다니엘처럼 될 것이고 돌로 친다면 나는 스데반처럼 될 것이고 목을 벤다면 세례요한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매질한다면 나는 사도 바울처럼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시편56편4,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