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출애굽기묵상

출애굽기 3:1-4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기독항해자 2011. 3. 9. 13:29

 

본문: 출애굽기 3:1-4

1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제목: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①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념하신 방법은 아주 특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념하시기 위해서 택하신 방법은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이제 더 이상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 80세의 노인입니다. 모세는 그가 쓴 시에서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 가운데 갈 수 없다는 모세의 말을 듣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모세의 나이를 통해서 충분히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굳이 모세를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십니까? 바로 우리가 모세와 같이 되었을 때에 개입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없는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내가 내 힘으로 계획하고 내 힘을 의지할 때는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만약 내 힘으로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었을 때,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반드시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할 때에야 비로소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진리를 사도 바울에게도 교훈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 속에 나타나게 됩니다. 환난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해주고 질병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②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불붙는 떨기나무입니다. 불이 붙었지만 떨기나무는 타지 않습니다. 떨기나무가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연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모세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불이 붙었지만 떨기나무는 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개성을 말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과 개성을 보존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획일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바로 그것이 불붙은 떨기나무의 상징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모세도 하나님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불이 붙지 않은 모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불이 필요합니다. 이 불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불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와 같이 우리 모두가 이 불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무능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차원이 다릅니다. 유능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긴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1절입니다. 모세는 양치는 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