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창세기묵상

창세기강해19(인간의 타락4) 창3:9-12

기독항해자 2010. 7. 23. 12:36

2010년 7월 24일(토)

사도신경-93장, 94장

본문: 창세기 3장 9~12절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제목: 창세기강해19(인간의 타락4)

오늘 아침에는 인간의 타락 네 번째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만큼 애절한 부르심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석배야!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별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숨은 곳을 모르셔서 부르시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정직하게 응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실 때 무한한 사랑의 소리로 부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무조건 아담을 용서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방종한 자녀를 만들 뿐입니다. 죄에 대한 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녀가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죄의 심각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세 번째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까지는 결코 이런 감정이 없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범죄 한 이후에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요한1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제 아담은 본성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단이 불어 넣은 생각입니다. 사단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신 것은 벌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성품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따뜻하고 넉넉한 품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보다 아버지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죄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정직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1:9)”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담은 정직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제가 먹지 말라 하신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 말을 하기까지는 긴 인류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갈보리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일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정직을 원하셨습니다.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직한 자에게만 그 사랑이 효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시편 15편입니다. 찾아서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정직이 최선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할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할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