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창세기묵상

창세기강해20(인간의 타락5) 창3:12-13

기독항해자 2010. 7. 24. 13:12

2010년 7월 25일(주일)

사도신경-95장, 96장

본문: 창세기 3장 12~13절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제목: 창세기강해20(인간의 타락5)

오늘 아침에는 인간의 타락 다섯 번째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죄의 본성은 자신을 합리화시키도록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말은 하나님이 그 여자를 내게 주시지만 안했어도 나는 죄를 안 지었을 것입니다. 어쩠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안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여자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정직하게 시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뻔뻔하기 까지 합니다. 이게 다 에덴의 법정에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도망칠 구멍까지 마련해 놓고 죄를 짓습니다.

1931년 5월 미국 뉴욕에서는 사람을 잘 죽이기로 유명한 크라울리(Crowley)라는 살인범이 경찰에 의해서 체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로 사람을 잘 죽이냐 하면, 우연히 길가는 사람이 잘못해 그의 모자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왜 기분 나쁘게 내 모자를 건드리냐"고 하면서 총을 쏠 정도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뿐 아니라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경찰까지도 죽이는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는 한 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기가 언제나 정당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정당한 이유로 살인했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 받은 후 전기의자에 앉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마침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늘 나의 삶을 비참하게 사형으로 마치는 것은 내 죄를 끝까지 합리화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죄를 짓게 되면 사람들은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죄를 짓게 하는 유혹자가 있습니다. 사단은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게 됩니다. 여기에서 사단이 왜곡된 하나님의 상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벌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면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게 됩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죄의 합리화 중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것을 죄의 변명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즉시로 그들의 양심들은 죄책감의 예리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 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그들의 죄가 드러나는 발가벗은 것을 숨기려 하였습니다. 이것도 죄의 합리화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후에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십시오! 그들은 처음에 이것을 시도하였고 그리고 나서 다른 것을 시도하며 하나님을 피하려 하였고, 그분의 귀청을 찢는 듯한 부르시는 소리로 부터 도망하려고 나무들에 숨었습니다! 죄는 그들에게 이런 어리석을 것을 하게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보시는 눈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상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사람이 그의 죄를 숨기려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속임수를 보십니다.

아담은 죄로 말미암아 의가 사라지므로 불의한 자가 되었고, 죄의 수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담은 죄를 정직하게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아쉽게도 아담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그의 죄를 변명하고,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잘못하셨다고 빗대어 말하였습니다. 아담은 그의 죄를 부인하고 그 자신을 변명하였으며, 실지로, 그는 하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그의 양심에 죄책감이 들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이 그가 죄를 범한 것을 보여 주실 때에 그가 이것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그 여자를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죄에 대한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그의 죄책이 불순종과 믿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지금 그는 비난과 모욕을 더 첨가하였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모든 죄인이 심판을 싫어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모든 각성하지 않은 죄인은 유죄선고로부터 그 자신을 변명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함으로서, 또는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쁘지 않다고 말함으로서,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죄를 비끼게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그의 죄를 고백하는 것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하와도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3).

잃어버린 죄인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한, 또는 그 자신을 변명하는 한, 죄의 용서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알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들의 정직한 죄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3).

오늘 나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계십니까? 다윗처럼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져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