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누가복음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눅2:1-7)

기독항해자 2010. 7. 21. 16:55

2010년 7월 21일(수)

본문: 누가복음 2장 1~7절

0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0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0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0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0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0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0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①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만삭의 몸으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배경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부러는 이렇게 이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이주하게 된 원인을 통해서 하나님께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이사 아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를 받아서 영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 영을 내리게 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매14년마다 한 번씩 제국 전체에 걸쳐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정확한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AD7년경에 로마 제국 전체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매14년 주기로 계산할 때 BC7년경에 인구조사가 실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눅3:23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가 30세쯤 되었다고 합니다. BC7년에 30년을 더하면 예수님은 약AD23년경에 공생애를 시작한 셈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의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 기간(AD26-36)과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빌라도의 통치 기간과 맞추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BC6-4년경에 탄생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탄생시에 인구조사가 있었다는 본문의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인구조사령은 BC7년에 내려졌지만, 실제로 인구조사가 실시된 것은 1년이나 2년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역사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②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유다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윗 언약을 이루시는 분으로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무엘하 22:51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시편 18: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③ 구유에 뉘었으니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인구조사를 받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많은 외지인들이 왔기 때문에, 그들이 묵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성지의 유대인들은 나그네와 행인들을 잘 대접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사뭇 다릅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그네가 여행을 하다고 묵을 곳이 없으면 가까운 집을 찾아가게 되면, 잠자리와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옛날보다 살기는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인심은 사나와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나그네를 잘 대접한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사용하신 방법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을 잘 대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3장 2절에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 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환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잠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이름에 경외심을 표현하는 것보다도 위대한 일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손님으로 오는 사람들을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손님을 대접하는 열의는 믿음을, 즉 대접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임을 믿는 정도를 표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그곳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기 때문에, 숙소를 찾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마구간이었습니다. 마구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도, 우리의 마음도 마구간처럼 더럽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바로 그런 더러운 세상과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방문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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