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누가복음묵상

사가랴의 예언3(눅1:67-80)

기독항해자 2010. 7. 16. 16:50

2010년 7월 16일(금)

본문: 누가복음 1장 67~80절

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제목: 사가랴의 예언3

⑤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사가랴가 언급하고 있는 거룩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아브라함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에 대한 보증으로 맹세하셨습니다. 그 맹세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6:13-18).”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기업을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모리앗산에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후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세기22:16,17).”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실 이유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진실하시고 변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고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큰 안위를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⑥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우리는 주님을 두려움이 없이 섬겨야 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1서 4:18).” 우리가 두려움이 없기 위해서는 사랑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란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형벌이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고 해서, 방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결과 의로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 우리는 다른 류의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린도후서 7:1).”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을 경외심이라고 부릅니다. 경외심은 우리는 성결한 삶을 이끌어 줍니다. 경외심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방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성결한 삶을 추구합니다.

또 우리는 의롭게 섬겨야 합니다. 목적이 옳다고 해서, 무슨 방법도 통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목적이 옳은 만큼,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것을 원하십니다. 흠이 있는 것은 제단에 올려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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