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2장 18~22절
18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은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제목: 금식 논쟁과 새 부대
① 지금은 금식할 때입니다.
유대인들은 주기적으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스가랴 7장 5절 말씀입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그 곳에서 오월과 칠월에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런 금식은 포로지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금식을 하였고 바리새인들도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금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기준을 가지고 경건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금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9절, 20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결혼식은 즐거운 날입니다. 그날 금식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의 주인공이 없다면, 그 결혼식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슬픔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금식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주님은 육체로는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금식할 때입니다. 금식은 죽는 것입니다. 금식은 진정한 생명이 육체에 있지 않음을 믿는 행동입니다. 금식은 헌신입니다. 금식은 결연한 의지입니다. 금식은 은혜입니다. 금식은 육체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날 이 땅에서의 금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금식할 때입니다.
② 예수님은 새 부대를 준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대체할 새 부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12명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을 대체할 새 부대를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새 부대가 무엇인지를 우리를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는 새로운 교회를 통해서 새로운 사역과 부흥이 일어납니다. 기존의 교회들은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는 부적합니다.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준비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제도와 조직이 생겨 영적인 역할을 대체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제도의 힘으로 교회가 움직이여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힘이, 돈의 힘이, 조직의 힘이 교회를 이끌어갑니다. 그런 교회들은 영적인 역동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 새로운 신생 교회를 만드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더 이상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도, 사마리아 교회도, 안디옥 교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존 주기가 있는 것처럼 교회도 생존 주기가 있습니다. 교회도 가장 생명력이 왕성할 때, 많은 교회들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런 개척 사역은 교회의 초창기 때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회가 성장한 후에는 더 이상 영적인 원리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행위론이나 합리적인 생각들이 이끌어가게 됩니다.
'묵상 > 마가복음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식일 논쟁②(막3:1-6) (0) | 2010.07.23 |
---|---|
안식일 논쟁①(막2:23-28) (0) | 2010.07.02 |
예수님의 교제권(막2:15-17) (0) | 2010.07.02 |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막2:13-17) (0) | 2010.07.02 |
죄 사함에 대한 논쟁②(막2:9-12) (0) | 2010.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