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마가복음 묵상

안식일 논쟁②(막3:1-6)

기독항해자 2010. 7. 23. 17:12

본문: 마가복음 3장 1~6절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되시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제목: 안식일 논쟁②

①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우리는 가끔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짖궂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바리새인들이 충동을 일으키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의도하셨습니다. 오늘의 행동도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을 아시면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연히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연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회당예배와 성전예배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회당예배는 남유다가 느부갓네살의 침입으로 성전 파괴된 후에, 포로지에 끌려간 포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성전예배는 짐승을 잡아 드리는 피제사가 중심이었습니다. 회당예배는 찬양과 성경봉독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였습니다. 회당예배는 교회예배로 이어지게 됩니다. 회당 안에는 두루마리 성경이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그 중에 하나를 가져와 읽게 됩니다. 이렇게 회당장이 성경을 가져와 읽어주면, 그 중에 한 사람이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침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서 회당예배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정체성을 얻게 되고 결속력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는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회당에 모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리새인들이 손 마른 사람들을 데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반드시 그곳에 올 것이라는 알고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2절의 말씀을 통해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완벽한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덫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피한다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상황을 가르침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예수님의 학습 방법은 현장 학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현장 학습을 통해서 바리새인들과 다른 관점에서 안식일을 재정의하셨습니다.

②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손 마른 사람들을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은밀하게 덫을 놓아지만,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기 전에, 사람들의 상식에 호소합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하시는 일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악을 행하는 것이고 죽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사람들은 완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실 때 탄식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시고 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들을 보시면서 탄식하고 노하셨습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사람보다 법을 앞세우고 있었습니다. 법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정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히기 위해 제정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법을 제정하신 근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우상화하고 절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견해는 법은 사람의 노예이고 종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사람은 법의 노예고 종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뒤엎고 계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