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마가복음 묵상

죄 사함에 대한 논쟁②(막2:9-12)

기독항해자 2010. 7. 2. 14:46

본문: 마가복음 2장 9~12절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제목: 죄 사함에 대한 논쟁②

①어느 것이 쉽겠느냐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과 서기관들 사이에 “죄를 사하는 권세”와 관련된 논쟁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서기관들은 명시적으로 예수님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속으로 한 의논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논을 가져와서 “죄를 사하는 권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그 곳에서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가 그곳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예수님께 드렸을 것입니까? 각자의 답을 마음에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이 더 쉽습니다. 왜요? 이 말은 우리 눈에는 중풍병자에게 어떤 일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은 어떤 일을 일으켜야 합니다. 만약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슨 의도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의 눈에 더 어려워 보이는 일을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②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예수님은 병 고치는 권세와 죄를 사하는 권세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렵습니까? 둘 다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단지 육체의 질병만을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가 계신 분이란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중풍병자의 사건을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마술적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말씀으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의 아버지께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로 그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③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명령하셨을 때, 이 중풍병자가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중풍병자는 혼자서는 도저히 걸어올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중풍병자는 자기 혼자서 걸어서 다녀본 것이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였습니다. 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걸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리는 이제 약해져서 더 이상 걸어 다닐 근육이 사라졌습니다. 중풍병자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병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자기 연민의 병입니다. 중풍병자는 영혼도 병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중풍병자는 총체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육체의 치료보다 먼저 영혼의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에 반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죄를 사해주시자, 이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상식적인 것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을 보는 순종은 특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그의 마음에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섰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을 보는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기준에서 바라보게 되면,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서 걷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