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마가복음 묵상

죄 사함에 대한 논쟁①(막2:5-8)

기독항해자 2010. 7. 2. 14:45

본문: 마가복음 2장 5~8절

5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6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제목: 죄 사함에 대한 논쟁①

①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오늘 말씀에 보면, 아주 중요한 신학 논쟁이 예수님과 서기관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으로 인해 촉발되었습니다. 5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논쟁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논쟁을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서기관들 사이에 있었던 죄사함에 대한 논쟁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2년 동안 저에게 치유 사역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게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치유 사역이 교회 안에서 회복되어야 한다는 데 이르렀습니다. 치유 사역은 복음 전도와 함께 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독자적인 사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전도 없는 치유 사역은 알맹이 없는 껍질일 뿐입니다. 치유 사역은 궁극적으로 복음 전도를 위해서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3절 말씀입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치유 사역은 복음 전도를 능력 있게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이 중풍병자의 질병은 죄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질병인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질병은 나쁜 습관 때문에 생길 수가 있습니다. 술이라든가, 흡연이라든가, 마약으로 인해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질병이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에게는 먼저 죄사함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사함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죄사함을 선포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죄사함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학공부를 많이 한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그들의 안테나에 걸렸습니다.

②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통한다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사람들은 눈빛만 보아도 마음이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함께 오랜 동안 같은 일을 같이 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이 통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자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람하도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서기관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그들의 문제는 지금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선포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그들이 잘 알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연관지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인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 두 가지 신학적 위기가 옵니다. 첫째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의 위기이고 둘째는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제2계명의 위기입니다. 인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게 될 때,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충돌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가 숨기고 싶은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무능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에 나약한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유혹 앞에 쉽게 넘어가는 우리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우리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 조차도 보고 싶지 않은 진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지금 자기들이 예수님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서기관들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