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마가복음 묵상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예수님(막2:1-5)

기독항해자 2010. 7. 2. 14:44

본문: 마가복음 2장 1~5절

1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도를 말씀하시더니

3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4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제목: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예수님

①소문이 들린지라

1절에 보면, 소문이 들린지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세상에는 소문이 많이 있습니다. 소문은 좋은 소문도 있고 나쁜 소문도 있습니다. 좋은 소문을 전하는 사람은 좋은 소문자입니다. 나쁜 소문을 전하는 사람은 나쁜 소문자입니다. 로 물러가셨습니다. 소문도 일종의 소식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소문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바쁜 소문을 스캔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어떤 소문을 전하고 있습니까? 좋은 소문입니까? 아니면 나쁜 소문입니까? 우리는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무엘하 18장에 보면, 압살롬이 요압의 손에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윗왕에게 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비록 압살롬이 아히마아스의 말대로 왕의 원수였지만, 여전히 다윗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왕에게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압살롬을 살해한 요합은 아히마아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을 왕의 원수로 보고 그의 죽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압은 압살롬을 왕의 아들로 보고 그의 죽음을 나쁜 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히마아스가 이 소식을 전하게 되면, 다윗왕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고, 그는 아무 잘못이 없이 불이익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압은 나쁜 소식을 전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구스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아히마아스는 기쁜 소식을 빨리 왕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요압에게 간청을 했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가는 동안 아히마아스는 요압의 말을 묵상했습니다. 요압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지금까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왕이 아히마아스를 가리켜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니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왕에게 이러서는 압살롬의 이야기는 빼고 나머지 소식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아히마아스처럼 좋은 소식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이사야 52장 7절 말씀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②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로 데려 왔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삭개오가 뽕나무를 발견한 것처럼, 그들도 지붕을 발견했습니다. 성지의 집 구조는 중앙에 광장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대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마당이 나옵니다. 이 마당 위에 햇빛과 비 그리고 먼지를 막기 위해서 천막 같은 덮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이 천막을 들추고 중풍병자를 내려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에 반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에 반응하는 수신자 장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보내면, 예수님은 반응하십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편과 난관을 극복하고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에 반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