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이형기)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6.05
가던 길 멈춰 서서 -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가던 길 멈춰 서서 -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6.02
얼굴을 돌린다(박노해) 얼굴을 돌린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라 누군든지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눈길을 돌리라 누구든지 불의한 세력에 침묵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두 귀를 닫으리라 세상에서 받을 칭찬과 보상을 다 받은 자에게 하늘은 그를 위해 남..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6.01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박노해)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 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6.01
길이 끝나면(박노해) 길이 끝나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6.01
알치 가는 길(배경숙) 알치 가는 길(배경숙) - 라다크 1 저마다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신의 축복을 비는 농부의 발원도 뱃속 깊은 장사꾼도 목적지를 모르는 아기의 무심한 여행도 떠도는 성자의 정처 없는 발걸음도 여행을 나서는 떠들썩함 위로 세속의 옷 속에 감춰진 환상이 또렷이 드러났다 옅은 안개가 세찬 ..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6.01
사평역에서(곽재구)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5.30
꽃(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5.30
연꽃 핀 날(원성스님) 연꽃 핀 날 연꽃이 피었습니다. 하늘의 정성과 땅의 인연으로 어둔 진흙을 딛고 일어나 꽃잎을 틔웠습니다. 님께 드리워질 꽃의 향그러움과 꽃분은 순풍을 따라 허공에 흩어지고 노송에 걸린 햇살 꽃숲을 비추어 온몸엔 붉고 푸른 그림자 무늬지워요. 이른 아침 맑은 이슬 담아 꽃을 끌어..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5.30
나는 누구인가(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나를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 일상/내가 사랑한 시 201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