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치 가는 길(배경숙)
- 라다크 1
저마다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신의 축복을 비는 농부의 발원도
뱃속 깊은 장사꾼도
목적지를 모르는 아기의 무심한 여행도
떠도는 성자의 정처 없는 발걸음도
여행을 나서는 떠들썩함 위로
세속의 옷 속에 감춰진 환상이 또렷이 드러났다
옅은 안개가 세찬 바람과 함께했고
햇살은 천공에 드리운 적막과 짝을 이루며
지상의 마지막 공기처럼 내리꽂혔다
바위들은 같은 모양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같은 속도로 기묘하게 창밖을 스쳐 지나갔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차체가
격렬한 진동을 받아 삐걱거릴 때마다
진로를 가로막는 산악 상부가 보였다
건조하다 못해 쩍쩍 갈라진,
거칠고 황량한 풍경을 관통하는
불가사의한 진동 속에 사람들은 다만 침묵했다
태고의 공룡처럼 거칠게 육박하는 절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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