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고린도전서

1장 3절

기독항해자 2019. 1. 13. 09:19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절에는 사도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기원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또한 우리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에 보내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 나라의 백성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은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에게는 모든 것이 다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곳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결핍이 없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는 에덴 동산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을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핍을 알아야 은혜를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결핍을 경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모든 것을 다 해주려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자라서 부모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를 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왜 탕자가 되었습니까?
그 집에 부족한 것이 있었나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섭니다.
탕자에게 그 집의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탕자는 그 집에서 결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감사란 결핍을 경험할 때가 생기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합니다.
치유하시는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이 지구별은 결핍과 은혜를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면 거기에는 자유와 해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유와 해방이 있나요?
아니요. 오히려 일탈만 있을 뿐입니다.
탈선과 악 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여기에 사람들은 교육과 종교로 사람들의 일탈을 저지시키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의 노력은 부질 없는 짓일 뿐입니다.
이 지구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가복음의 탕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모두를 용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강이 임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폭풍 이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도 선미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여유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는 배 위에서 예수님은 잠을 청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우리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부질 없는 노력입니다.
다만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우리 중에 있는 단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그게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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