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히브리서

7장 2절

기독항해자 2018. 6. 17. 09:30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름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드린 왕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준 것을 십일조의 유래로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체나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 단체나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선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운영비를 어떻게 거둡니까?

십시일반, 구성원들에게서 갹출하게 됩니다.

회비를 거두는 것입니다.

국가에 내는 회비를 세금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런 회비를 냅니까?

조직이나 단체의 회원이 되면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는 회비보다 받은 이익이 크기 때문에 기꺼이 회비를 내는 것입니다.

돈이나 사람이나 모이면 따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니라 삼도 될 수 있고 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체를 만들고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는 부족국가 단계에서 국가에 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을 가지고 십일조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죠.

십일조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 십분의 일을 드렸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어떤 관계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모르지는 않았겠죠.

그래야 말이 되죠.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멜기세덱은 의의 왕입니다.

멜기세덱의 뜻이 의의 왕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기자고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은 의의 왕이시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의의 왕이십니다.

역사 이래로 의의 왕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옛날 공자는 요순시대를 의의 왕이 다스리는 시대로 보았습니다.

노자는 이런 시대를 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법이 없어도 사는 시대라고 합니다.

법이 없어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게 합니다.

내가 아니라 타인이 주가 됩니다.

타인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는 도적이 없습니다.

도적이 없으니까 도적을 처벌하는 법도 없습니다.

도적이 없으니까 감옥도 없고 감옥을 운영할 제도도 없습니다.

공자는 이런 나라를 성인의 나라, 군자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의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피여 향내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나라가되면 사막이 꽃동산되라

사자들이 어린양과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나라가 이제 속히오리라


이사야 11장 1-9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는 이 나라를 고대합니다.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니 다른 해를 입히지도 상하게 하지도 않게 됩니다.

이런 사회는 이 말씀이 온전히 구현된 사회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모두가 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한자어로 역지사지란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살렘 왕입니다.

살렘은 처음에는 평강이란 뜻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었습니다.

모음이 없었습니다.

살렘과 샬롬은 표기하면 같습니다.

자음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살렘에 샬롬의 뜻을 더한 것은 후대의 일입니다.

이런 해석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드라쉬적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미드라시가 뭘까요?


미드라시라는 말은 성경 본문을 축어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집중적으로 연구·조사함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조사가 필요하게 된 이유는 모세 오경에 '기록된 율법'을 후대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다시 해석할 필요가 생겼고, 또한 구전율법의 자리를 놓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드라시는 성경의 모순들을 없애고 새로운 법률에 성경적인 근거를 세우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 본문에 새로운 뜻을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미드라시 모음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할라카 미드라시입니다.

할라카 미드라시는 기록된 율법으로부터 학문적인 방법으로 추론한 구전율법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가다 미드라입니다.

하가다 미드라시는 입법보다는 교화에 목적을 둔 설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둘은 성서 내면의 뜻을 밝히려고 합니다. 

하가다 미드라시는 매우 존중되기는 했지만, 할라카 미드라시만큼 권위를 지니지는 못했습니다. 

할라카 미드라시가 대체로 단조롭고 법률적이며 진지한 반면, 하가다 미드라시는 단조롭지 않고 상상력에 호소하고 교화를 목적으로 하며 진지함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이들 미드라시를 모아 놓은 모음집을 탈무드라고 부릅니다.


후대와 와서 살렘은 샬롬은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평강의 도시, 평화의 도시라고 불렀습니다.

그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왕은 평화의 왕이고 평강의 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고 평강의 왕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의의 왕이고 평강의 왕이시다.

이게 히브리서 기자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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