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아론의 후손이 아닙니다.
아론의 후손이 아니니까 대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등장시키는 사람이 멜기세덱입니다.
멜기세덱, 잘 들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지금이야 성경을 누구나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렇지만 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성경은 누구나 갖고 있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은 딱 두 번 구약성경에 나옵니다.
그렇니까 멜기세덱은 평생 들어보지 못한 이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멜기세덱의 이름을 들었을 때 생소했을 것입니다.
멜기세덱, 뭐 하는 인간인 데 반응했겠죠.
그래서 멜기세덱을 설명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누구?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이곳에서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올 때 등장합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삼촌 아브라함으로부터 분가합니다.
롯이 소돔성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시날 왕 그돌라오멜이 동맹한 왕들과 함께 소돔성을 비롯한 다섯 성을 정복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싸움을 했는데, 일방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소돔성을 비롯한 다섯 성은 제대로 붙어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습니다.
옛날 전쟁에서 패하면 패한 나라의 시민들은 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소돔성에 살았던 롯은 노예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재산도 다 빼았겼습니다.
그 소식을 아브라함이 들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아들과 같은 조카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롯은 아브라함의 재산을 다 상속하게 되는 상속자 0순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실력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에 가나안에는 도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도시 국가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스스로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병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도나 도적을 만나도 국가가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런 국가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사병과 동맹한 사람들과 함께 롯 구출 작전을 벌였습니다.
당연히 아브라함이 승리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돌라오멜 일당은 승리에 도취해 있었을 것입니다.
설마 자기들에게 도전할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승리를 만끽하기 위해서 술판을 벌였을 것입니다.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다음에는 골아 떨어졌을 것입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골아 떨어진 것입니다.
승리는 여반장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야음을 틈타 승리에 도취한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들을 공격하기 전에 첩자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낸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을 것입니다.
전략을 짜고 전술을 도모했을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아브라함이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 밤 아브라함은 돌격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롯 뿐만 아니라 끌려간 모든 포로들과 재산들을 다시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승리했던 소문이 그 일대에 퍼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승리한 아브라함을 영접하기 위해 소돔왕과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과 살렘 왕 멜기세덱이 조우하게 됩니다.
그런데 살렘이란 말은 구약성경에서 여기와 시편에만 등장합니다.
살렘 왕은 멜기세덱을 소개할 때만 등장합니다.
여기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살렘은 어디인가?
실재로 존재했던 도시인가?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살렘을 예루살렘으로 봅니다.
살렘은 예루살렘과 같은 곳일까요?
여호수아서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정복한 것으로 나옵니다.
여호수아 12장 10절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그런데 사사기에 보면 예루살렘은 정복되지 않은 도시로 나옵니다.
여호수아 15:63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
사사기 1:21 그렇지만 예루살렘을 여부스인들의 도시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
사사기 19: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역대상 11: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땅의 주민들이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을 빼앗기 전에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의 이름이 여부스로 불렸습니다.
문제는 이 성의 이름이 언제부터 예루살렘으로 불렸냐는 것입니다.
기원전 1900년경의 이집트 제12왕조시대 문서에서 예루살렘은 '아우샤멤'(Aushamem) 혹은 루살리뭄이란 이름으로 지칭되었습니다.
그 이후 시대인 아카드와 앗수르 문서에는 그 이름이 '우르살렘'(Urusalem)이란 형태로 나오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시대에 이곳은 '살렘'이라는 축약형 이름으로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고대 가나안지역의 신이었던 '살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원적 의미는 우가릿인들이 섬겼던'살렘'이라는 신명칭과 '기초'라는 의미의 '예루'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우가릿은 기원전 1200년경 해양족의 침략을 받아 멸망 당한 후 1928년 우연히 발견된 곳입니다.
이곳은 기원전 이천년기에 가나안의 주요도시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에는 토판이 발굴되어 현재 번역과 해독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가릿에서 사용한 언어를 우가리트어라고 합니다.
우가릿어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와 동일한 셈족으로 두 언어는 언어학적으로 대단히 가까운 관계입니다.
우가릿어의 연구는 히브리어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살렘'을 히브리어 단어 '샬롬'(평화)과 연관시켜 예루살렘을 '평화의 도시'로 이해한 미드라쉬적 유대인 해석은 훨씬 후대에 와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을 여부스족이 차지하기 전에 살렘이라고 하는 신을 섬기던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 시대에도 여부스족은 가나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부스족도 살렘 성에 살았겠죠.
멜기세덱은 이 족속의 왕이자 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제정일치시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살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