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이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우리가 자라가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구절이 우리가 자라가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우리가 자라가지 않으면 배교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인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우리 나라 개신교 교단 중에 가장 큰 교단인 합동측 목사입니다.
합동 교단은 칼빈주의 노선을 따릅니다.
칼빈의 가르침 중에 견인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교리와 이 말씀이 상충되어 보입니다.
칼빈은 이 부분을 해석할 때,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를 가져옵니다.
배교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가라지였다는 것입니다.
명목상 크리스천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닮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 하신 행동을 본받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명목상 크리스천에게는 이런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 없습니다.
왜 명목상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나옵니까?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명목상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를 이 말씀에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예언하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기도 나옵니다.
그분의 선물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박해가 오면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박해가 오면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이들이 바로 명목상 크리스천들입니다.
박해가 없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는 일입니다.
오늘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나오지만 진짜와 가짜는 구별될 날이 오게 됩니다.
바로 종교박해입니다.
시온의 대로를 갈 때는 누구나 진짜 같아보입니다.
그렇지만 박해가 오면 진짜와 가짜 구별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의 모습, 가정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해 보이지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는 개차반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27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교회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것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게 중요합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입니다.
진짜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삽니다.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데 관심입니다.
가짜는 하나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선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가라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가라지란 뜻입니다.
알곡인지 쭉정인지는 내 자신입니다.
내가 가라지인지는 내가 압니다.
신앙의 문제는 내 문제입니다.
결국 신앙은 행함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 것인가 VS 내 마음대로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