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신앙을 전환하지 오래 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 정도의 지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논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어려워했습니다.
사실 멜기세덱은 어렵습니다.
구약 성경에 멜기세덱이 나오는 부분은 딱 두 곳입니다.
그 시대에 성경은 집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회당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평생 가도 멜기세덱에 대해서 듣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 성경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전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아무나 성경을 필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서기관이라고 하는 신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그리고 성전이 파괴됩니다.
성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한 권으로 된 책이 아니었습니다.
두루마리로 이루어진 여러 권의 책들이었습니다.
창세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이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되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모세오경에 선지서가 더해졌습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대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선지서
여기에 성문서가 더해집니다.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다섯 두루마리(룻기, 전도서, 아가, 에례미야 애가, 에스더), 역사서(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
구약성경이 하나로 모아진 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음입니다.
성전에 있던 성경도 바벨론에 갔을 것입니다.
성전이 파괴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중심은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의 예배는 짐승을 잡아 드리는 희생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회당의 예배는 성경을 설명하는 말씀 중심의 예배였습니다.
오늘 교회의 예배와 흡사했습니다.
교회의 예배는 회당의 예배의 복사판이죠.
회당에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회당마다 성경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는 아람어를 썼습니다.
일상생활은 아람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점점 히브리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제국이 몇 번 바뀌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앗시리아로, 앗시리아에서 페르시아로,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1세기 교회는 헬라어 문화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어도 쓰고 아람어도 썼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히브리어를 알지 못했습니다.
회당의 랍비들이 히브리어롤 아람어나 헬라어로 번역해서 설명해주어야만 이제 성경을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1세기 교회는 히브리어 성경 이외에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이라고 하는 헬라어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눈으로 보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귀로 듣는 책이었습니다.
랍비들이 하는 일은 그날 읽은 부분을 설명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멜기세덱에 대해서 듣기는 들었을 것입니다.
자주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까먹을 수가 있습니다.
멜기세덱에 대해서 말하자 사람들이 멜기세덱에 도대체 누구지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기껏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설명했는데, 멜기세덱이 누구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을 모르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설명해 보았자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사도가 당연히 중급 과정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판단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때가 오래되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한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닌 것입니다.
아직 초보도 떼지 못한 것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닌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오래했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갓난아이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하는 나이인데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한심한 수준인 것입니다.